한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 시 법률적 쟁점’ 보고서를 16일 발표했다. 연구에는 박선종 숭실대 교수,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석은 한은 금융결제국 과장이 참여했다.
최근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인기를 끌고 기술 발전으로 현금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은 이런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CBDC를 발행하면 어떤 법적 이슈가 발생하는지를 검토했다.
보고서는 디지털화폐의 발행 자체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고 봤다. 한국은행법 제49조는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어떠한 규격·모양·권종(券種)의 한국은행권도 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최근 기술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디지털화폐도 포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만 CBDC 발행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여러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공개형 블록체인’ 방식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은행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CBDC는 참여자를 제한하는 ‘폐쇄형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폐쇄형 블록체인 방식에서는 비트코인처럼 화폐 발행량을 민간 자율로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고서는 CBDC를 발행할 때 한은이 직접 유통하는 방식은 비용·위험 부담이 큰 만큼 중개기관을 통하는 것이 낫고 개인의 재산권과 개인정보 침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실제 CBDC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윤성관 한은 전자금융조사팀장은 “CBDC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가까운 시일 안에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CBDC를 통화정책 수단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영식 서울대 교수와 감동섭 한은 과장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모형’이라는 보고서에서 “CBDC에 이자를 지급한다고 가정하면 이 금리를 조정해 단기명목금리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등 정책 수단도 CBDC를 통하면 실효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