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말 뒤집고 법원판결 무시…美상무부 억지에 韓철강 고사할 판

["韓, 싼 전기료로 철강 지원" 美 또 보조금 딴죽]

전기료 문제라면서도 혜택 범위놓고 우물쭈물

일각선 "韓철강 옭아매려는 마음만 앞선 촌극"

"한국 지렛대 삼아 눈엣가시 중국 압박" 지적도

“그래도 한 나라의 정부 기관인데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기가 찹니다.”

지난 13일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덤핑관세 판결 결과를 받아본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쓴웃음부터 지었다. 상무부가 또다시 한국 전기료가 문제라며 딴죽을 걸었기 때문이다. 상무부는 이번 판결에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전력공사가 전기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철강업체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들이 문제가 안 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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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여 전만 해도 한국 전기료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상무부였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전이 자의적으로 전기료를 책정해 자국 업체를 돕고 있다는 현지 철강업체의 주장에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상무부는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국 업체를 돕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봤다. 대신 다른 검증 방식을 제시했다. 우선 한전이 다른 전력회사처럼 객관적인 전기요금 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한국 철강업체의 전기료가 이 시스템에 따라 책정됐는지를 살피기로 했다.


결과는 무혐의. 상무부는 조사 결과 한전이 외부 독립회계기관에서 받은 데이터에 기반해 다른 전력회사와 동일한 구조로 요금을 책정했다고 판결했다. 철강업체에만 특혜를 준 사실도 없었다. 상무부는 조사 대상이던 세아제강 등 철강업체들의 전기료가 다른 기업들과 같은 방식으로 매겨졌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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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내 행정법원 격인 국제무역법원(CIT)까지 나서 재차 검증한 판단이다. 미국 철강업체들이 상무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CIT에 제소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CIT는 상무부의 검증 과정이 합리적이라며 현지 철강업체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한 통상전문가는 “상무부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법원이 판단했을 때와 상황이 달라졌다고 변명하면 그만”이라며 “한국의 전기요금 체계가 그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은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13일 유정용 강관 덤핑조사 결과를 밝히며 전기료 문제를 꺼내 든 상무부를 향해 ‘스스로 말을 바꾼 것도 모자라 법원 판결까지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철강업계가 특히 황당해하는 것은 상무부가 전기료가 문제라면서도 정작 한국 철강업체가 어느 정도 혜택을 받았는지를 놓고서는 우물쭈물하고 있어서다. 상무부는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한전 덕분에 한국 철강업체가 득을 본 것은 맞지만 얼마나 혜택을 봤는지는 우리도 알아보는 중”이라고 밝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은 조사가 그만큼 부실했다는 반증”이라며 “한국 철강을 옭아매려는 마음만 앞서다 보니 나온 촌극”이라고 꼬집었다.

상무부의 자기 모순적 발언을 지켜본 철강업계는 이번 판결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낸 뒤 한국을 무역확장법 232조(모든 수입산 철강재에 25% 추가 관세 부과) 적용 대상에서 빼줬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지 않았겠냐는 분석이다. 어떻게든 자국 철강업체를 도우려는 상무부가 추가 장벽을 쌓기 위해 해묵은 전기료 문제를 꺼내 들었을 가능성이 적잖다는 것.

눈엣가시 같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한국을 지렛대 삼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고율의 보복관세를 매겨 직접 수출길을 막아뒀지만 중국은 미국에 여전히 골칫거리다. 중국이 저가의 철강재를 각국에 쏟아내면 글로벌 철강 가격이 낮아져 미국 철강 가격 인하 압력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중국을 더 압박해야 하는 미국의 시야에 세계에서 가장 중국산 철강재를 많이 쓰는 한국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중국을 억누를 수만 있다면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괘념치 않겠다는 모양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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