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을 앞둔 경찰과 검찰이 ‘뜨거운 감자’인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을 두고 진실규명보다는 주판알 튕기기에 치중하고 있다. 경찰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의원이 연루됐다는 의혹 감추기에 급급했다가 부실수사 지적이 나오자 뒤늦게 수사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반면 검찰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터라 추가 송치 등 우선 과정을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번 사건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비롯해 양측 현안인 수사권 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자체 셈법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드루킹’ 김모씨를 비롯한 댓글 팀원들의 계좌 추적을 통해 운영자금의 출처를 확인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검찰이 이날 김씨 등 3명을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찰은 ‘늦장·부실수사’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김씨 구속기한인 18일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경찰 수사는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기사 댓글 조작 사건에 머물러 있었던 형국이다. 특히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댓글 여론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3주가량 함구해 경찰이 신속한 수사보다는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사실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뒤늦게 수사를 확대 중인 경찰과 달리 검찰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습이다. 검찰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추가 송치가 있을 때까지 지켜보겠다’며 수사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바른미래당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와 드루킹의 범죄행위 사이 연관관계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이 역시도 ‘경찰 수사 과정을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수사 의뢰에 따라 사건을 수사부서에 배당하지만 경찰에 수사를 지휘하는 선까지만 참여하겠다는 모양새다. 그나마 검찰은 지난해 11월 김씨의 불법 선거운동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린 데 대해 야당을 중심으로 ‘봐주기 수사’ 등 비난 여론이 일자 해당 사건을 검찰 수사점검위원회에 회부하는 등 다시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이미 완료돼 재수사할 수는 없으나 당시 수사 내용에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다는 차원에서다. 지난해 5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카페 회원을 상대로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김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대선 이후인 지난해 10월 무혐의 판단과 함께 사건을 종결했고 같은 해 11월 불기소 처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법조계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양측이 엇갈린 대응을 하는 이유를 셈법의 차이로 보고 있다. 현재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 조정이라는 사안을 목전에 두고 있다. 게다가 해당 사건 수사에 여당 유력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다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터라 양측 모두 수사하기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검찰과 경찰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이 ‘잘해봐야 본전’인 셈이다. 김씨 등을 검찰에 송치한 뒤 수사 방향을 두고 경찰 수뇌부가 연일 회의를 열었다고 알려진 점도 이 같은 고민을 뒷받침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경찰이 해당 사건을 두고 뒤늦게 수사에 착수하고 검찰이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지방선거, 차기 경찰청장 인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기소 전까지 내놓을 수 있는 수사 결과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경찰청장 인선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터라 이래저래 수사 접근이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경찰은 6월 퇴임하는 이철성 경찰청장 후임 인선을 앞두고 있다. 경찰이 수뇌부 가운데 일부가 후임 경찰청장 하마평에 오른 상황에서 이번 수사 결과가 각 후보군에게 득이 될지 실로 작용할지까지도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