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산업부, 반도체 정보공개 제동> 한고비 넘겼지만...'기술유출'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30나노 이하급 D램공정 등 대부분 노출될수도"

산업부 기술보호위 전문가들 노동부와 다른 판단

본안소송 결과 나와야 '정보공개 논란' 종지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 반도체 공장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다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논란이 새 국면을 맞았다.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도 고용노동부의 반도체 공정 공개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고용부는 산업부와 권익위의 결정을 일단 존중하지만 추가적으로 법원의 최종 판결까지 받아보겠다는 입장이어서 파열음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산업부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 전문가위원회는 전날에 이어 2차 회의를 열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가 공개되면 국가핵심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최종 판단을 내렸다.


지난 1월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다투는 판결에서 법원이 공개 결론을 내린 후 고용부와 삼성은 평행선을 달려왔다. 당시 대전 고등법원은 2014년 1심 판결을 뒤집어 2007~2014년 삼성 온양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가 “경영·영업상 기밀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후 고용부는 지난달 6일 산업재해 입증을 위해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도 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도록 행정지침을 개정했다. 이어 12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공장, 19일에는 삼성 구미·온양 반도체 공장, 20일에는 기흥·평택·화성 반도체 공장의 보고서 공개를 결정했다.

작업환경 측정보고서에는 △공장의 생산라인 배치도 △생산공정 흐름도와 장비별 역할 △장비와 설비, 시설 종류와 개수, 사양 △배합 비율을 추정할 수 있는 화학물질 모델명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산업부의 판단은 달랐다. 위원회가 국가 핵심기술이 포함됐다고 인정한 것은 경기 기흥·평택·화성, 충남 온양 공장의 2009~2017년도 보고서다. 기흥·평택·화성 공장은 정부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한 30나노 이하급 D램과 64단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곳이다.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공정명과 레이아웃, 화학물질의 상품명 및 월 사용량 등으로 정부가 지정한 반도체 관련 핵심기술 7가지 중 6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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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으로 위원회는 2010~2017년 화성 공장의 작업환경측정 보고서에 △30나노 이하급 D램의 공정기술 △30나노 이하급 낸드플래시의 공정기술 △30나노 이하급 파운드리 공정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흥 공장의 2009~2017년 보고서에는 △30나노 이하급 파운드리 공정기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공정기술이 포함됐다. 온양 공장에서는 30나노 이하급 D램과 낸드플래시 조립기술 유출 우려가 있었다. 평택 공장 2017년 보고서를 통해서는 30나노 이하급 낸드플래시 공정 기술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판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측정 위치도는 최적의 공정배치 방법을 포함하고 있어 유출 시 경쟁업체의 생산성 개선에 활용될 수 있고 특정 라인·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명과 월 취급량 등을 통해 공정의 노하우 및 레시피 도출이 가능하다는 게 위원회의 판단”이라며 “후발업체가 (이를) 획득할 경우 여러 대체물질의 검증을 거치지지 않고도 최적물질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용부는 해당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산업부의 판단도 정보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의 영업기밀 보호보다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권 보호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날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기업의 영업비밀이 근로자의 건강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게 고용부의 입장”이라며 “산업부가 보고서 내용을 핵심기술로 판단하더라도 고용부는 기준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을 판단해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삼성 계열사에서 320명의 노동자가 직업병 발병을 호소했고 이 가운데 118명이 사망했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삼성은 지난달 30일 수원지방법원에 이와 관련해 정보공개 불복 행정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황이다. 권익위도 이날 삼성이 신청한 반도체 공장의 보고서 공개 집행정지를 받아들였다. 결국 행정심판 본안 소송에서 결론이 나와야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 논란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평행선을 달리던 다툼에서 삼성이 일단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부 산업기술보호위가 대전고법이 경영·영업상 기밀이 아니라고 판단한 온양 공장의 보고서(2011년 이후)에도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법원이 결국 보고서를 공개는 하되 공개 대상을 산업재해 피해를 입은 해당 근로자로만 제한하고, 입증과 관련 없는 민감한 생산공정 정보는 공개 범위에서 제외하는 절충안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세종=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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