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는 단연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최된다. 따라서 남북 경제협력이 이번에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북한 역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협에 대해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전개될 수 있는 경협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북한 경제 바로 알기에 나서고 과거 경협의 문제점 등을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8일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현대경제연구원 공동주최로 열린 한반도경제포럼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가 앞으로 풀려나간다면 남북 경협 재개는 시기의 문제만 남을 뿐 예정된 수순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라며 “더욱이 이번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급격하게 풀려나간다면 수개월 후 남북 경협이 핵심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동남아 시장에서 성공한 일본처럼 정부는 북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민간은 수익사업을 전개하는 등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포럼에서 ‘2018 정상회담과 남북 경협’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양 교수는 남북관계가 단절된 지난 10년 동안 크게 변한 북한 경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경제 사정이 10년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전됐고 주민들의 평균 소득과 소비 수준이 상승했다”며 “특히 국영 부문에 시장경제적 요소가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경제의 북한 침투율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국은행의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9%로 1999년 6.1%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양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북한 민간 부문의 화폐자산이 축적돼 북한 내수를 대상으로 하는 남북 경협사업도 가능해질 수 있고 지방 행정단위, 개별 기업의 의사결정권한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물론 소위 ‘퍼주기 논란’을 야기한 기존 정부의 남북 경협 추진 방식과 2016년 11월 이후 유례없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은 신속한 경협 재개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정상회담 이후 제재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따라 경협 논의의 방향도 달라지겠지만 일단 단순히 ‘재개’하는 수준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틀·방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현재 남북 경협이 위기에 처한 것은 정경분리원칙이 붕괴됐기 때문”이라며 “현실적으로 완전한 정경분리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민간과 정부 차원의 경협은 분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남북 경협을 한반도 통일 등과 같은 경제 외적 목적이 아닌 한국 경제 성장동력 확보 등 경제로 폭을 확 좁혀 다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양 교수는 북한의 현재 경제적 고민거리로 에너지·금융시장·대외개방 등을 꼽았다. 양 교수는 “북측이 남측으로부터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한 가지만 찍어서 말한다면 현금을 제외하면 전력이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수력·화력·원자력 등 기존 발전소의 설비용량과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발전소의 노후화 등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또 양 교수는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 경제정책 당국은 금융 분야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최근 은행카드 사용 확대, 주민 예금 유치 캠페인, 초보적 상업은행 설립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2013년부터 중앙 5곳, 지방 22곳 등에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를 설치하고 개방에 나섰지만 성과가 부진한 대외개방정책 역시 김정은 정권의 숙제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