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시각] 트럼프의 '퀴드 프로 쿠오(quid pro quo : 대가성 거래)'

김능현 경제부 차장

김능현 차장



지난 1998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에 휘말렸던 당시 쟁점은 ‘퀴드 프로 쿠오(quid pro quo)’의 존재 여부였다. 모종의 혜택과 섹스를 맞바꾼 ‘성상납’이 존재했는지를 놓고 미 정치권은 양보 없는 공방을 벌였다. 당시 회자된 라틴어 ‘quid pro quo’는 영어로 ‘something for something’쯤 된다. 무엇인가에 대한 보상 또는 배상이나 동등한 교환을 의미하는데 정계나 외교가에서 ‘대가성 거래’라는 의미의 유식한 말로 사용된다. 요즘 퀴드 프로 쿠오의 고수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거래에 혈안이 돼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퀴드 프로 쿠오는 전직 미국 대통령의 그것과 다소 상이하다. 국가 간 거래에서는 통상 동등한 가치를 지니거나 적어도 형태가 유사한 대가를 서로 주고받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에게 돈이 들지 않는 ‘무형의 이익’을 주고 자신은 ‘유형의 이익’을 챙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첫 해외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이란을 압박하는 대가로 사우디와 3,500억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그는 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준 대가로 올해 중간선거와 다음 대선에서 유대인으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을 것이다.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분쟁지역에서 ‘현상 유지’를 택한 전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현상 타파’도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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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과 유형의 이익을 교환하는 트럼프식 거래는 ‘동맹’인 한국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대북 협상을 연계하겠다는 발언이 단적인 예다. ‘SM-3·SM-6 함정 탑재 요격 미사일’ ‘해상작전 헬기’ 등 수조 원대의 미국산 무기 도입을 제멋대로 기정사실화한 주한미군의 ‘2018 전략다이제스트’를 보면 사우디의 사례가 오버랩된다. 안보와 경제의 구분 따위는 무시한 채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맞바꿀 수 있다는 트럼프식 거래는 상대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양보를 얻어내는 ‘미치광이 전략’과 맞물려 시너지를 내고 있다.

‘북핵’을 주요 의제로 하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트럼프의 거래는 한층 노골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작은 나라 한국은 트럼프의 거래에 어느 정도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왕 거래할 거라면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꿈 같은 논리는 던져버리고 유형의 이익 못지않은 무형의 이익이라도 제대로 챙겨 이익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미국에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며 우는 시늉을 하는 엄살 전략이라도 구사할 필요가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을 마치고 돌아와 ‘레드라인을 지켰다’며 자화자찬하는 무개념으로는 트럼프에게 끌려다니기만 할 뿐이다.
nhkimchn@sedaily.com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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