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후 세대’로 청바지를 즐겨 입고 비틀스를 좋아하는 미겔 디아스카넬(57)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이 쿠바 국가수반에 오르면서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연다. 지난 2008년 피델 카스트로의 뒤를 이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86)가 19일 의장 임기를 마치면서 카스트로 형제의 집권은 59년 만에 마감된다.
19일(현지시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선출을 위해 이틀간 열린 전국인민권력국가회 총회에서 라울 카스트로 의장의 후임으로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이 선출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전일 국가평의회 총회에서 단독 후보로 추대된 디아스카넬은 지난달 선출된 인민권력회 의원 605명의 인준 절차를 거쳐 이날 신임 의장으로 확정됐다.
10년의 임기를 마친 뒤 권력에서 물러나겠다고 누누이 밝혔던 라울은 이날 총회에 상징과도 같던 군복 대신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 차림으로 활짝 웃으면서 디아스카넬 신임 의장을 대동한 채 입장했다. 총회에서 디아스카넬이 단독 추대되자 라울은 그를 꼭 안으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쿠바는 혁명 이후 50년간 장기 집권한 피델 전 의장에 이어 2008년 형의 자리를 승계한 라울이 10년 동안 쿠바를 이끌어왔다. 디아스카넬이 추대되면서 195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카스트로의 성을 쓰지 않는 지도자가 나오게 됐다.
쿠바혁명 다음해인 1960년에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디아스카넬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하다 1993년 공산당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뛰어들었다. 2003년 최연소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2009년 고등교육부 장관을 역임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 국가평의회 수석부의장에 선출된 후에도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대중과 교류를 늘리면서 쿠바 국민들에게 친근한 지도자 이미지로 다가가고 있다. 현재 쿠바에서는 그의 훤칠한 키와 회색 머리 때문에 쿠바의 ‘리처드 기어’로 불리기도 한다.
2013년 라울이 그를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지명해 일찌감치 ‘차기 의장’으로 낙점되며 쿠바 2인자 역할을 해온 디아스카넬은 혁명 이후 태어난 이른바 ‘포스트 혁명’ 세대다. 그는 비틀스를 좋아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는 등 실용주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쿠바 인터넷 접속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동성애 문제에도 우호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등 이전 지도부와 달리 개방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만 많은 기대만큼이나 디아스카넬 앞에는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정체된 경제개혁에 힘을 불어넣어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다시 뒤틀리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 시급한 문제다.
현재 쿠바는 주요 원유 공급처인 베네수엘라의 정국혼란으로 원유 공급이 줄면서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이터는 “쿠바인들에게 정치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더 큰 걱정”이라며 쿠바 국민들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보도했다. 또 2015년 국교 정상화로 회복됐던 미국과의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인들의 쿠바 개인여행을 제한하고 쿠바 군부와 거래하는 미국 기업의 거래를 단속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디아스카넬로 대표되는 공산당 2세대가 집권하게 될 쿠바는 지금까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외신들은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라울이 통치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오는 2021년까지는 공산당 총서기직을 맡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라울은 국민과 군부의 지지를 바탕으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혁명 1세대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 라울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 빠른 개발을 원하는 쿠바인들의 요구에도 당분간 디아스카넬은 급격한 변화보다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젊은 정치인들로 지도부가 바뀌고 있지만 적어도 2021년까지는 라울이 공산당 최고지도자로서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며 “특히 미국과 관련된 주요 전략 결정에는 라울의 승인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