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자발적으로 매각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시중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지배구조 개편작업도 속도를 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와 삼성 등 대기업과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와의 정면충돌이 예상된다.
22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 위원장은 지난 20일 간부회의를 소집해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소유 문제의 경우 관련 법이 개정될 때까지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법 개정 전이라도 금융회사가 자발적 개선 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는 보험업법 개정과 관련해 국회의 처리를 지켜보겠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사실상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정조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금산분리 차원에서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보유자산의 3%까지 보유하도록 한 보험업법을 현재의 취득원가(장부가) 기준에서 시장가치 기준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27%의 상당 부분을 팔아야 한다. 금액으로는 약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며 공을 국회로 떠넘겼던 최 위원장이 “법 개정 전에라도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은 문 대통령이 금융혁신·금융개혁을 잇따라 강조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에도 김기식 전 원장의 외유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금융 분야를 놓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금융권은 달라진 최 위원장의 태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불명예 낙마하면서 최 위원장에게 ‘금융적폐’를 청산하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내려온 것 같다”며 “지배구조 등 첨예한 이슈를 두고 갈등이 본격화할 조짐”이라고 내다봤다.
최 위원장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통과도 강조했다. 그는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도록 입법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면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 내실화, 이사회 내 견제와 균형 강화 등 핵심 근간은 결코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자를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 포함 △금융사 CEO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및 감사위원후보추천위원회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지난달에 발표했다.
다시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한 최 위원장의 강공 드라이브에 대한 반발도 거세 금융 당국과 금융권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최 위원장은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여러 차례 금융지주 CEO가 자신이 추천한 이사회를 통해 ‘셀프 연임’을 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문제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금융지주들은 CEO의 영향력 악화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비대화하면서 KB사태와 같은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외이사의 목소리가 커지면 의사결정이 지연돼 빠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금융위는 2·4분기 중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보험·부동산신탁사 등 법령개정이 없이 인가가 가능한 경우 3·4분기 중 인가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다음달부터 금융위 내 ‘금융혁신 점검회의’를 통해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사항을 매달 점검하고 추진실적 및 계획을 정기적으로 발표할 방침이다. 최 위원장은 금융감독 체계를 둘러싼 금감원과의 관계를 의식한 듯 “금융위 직원들은 금융혁신 추진 등 금융현안 대응에 있어 금감원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