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김현수 증권부장 hskim@sedaily.com
문재인 정부 들어 균형성장을 목표로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들이 주로 상장된 코스닥시장도 정부 중기 정책의 중심에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코스닥 랠리는 올해 초 16년 만에 900선을 넘는 쾌거로 이어졌고 한 차례 조정 장세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 평균 거래대금이 지난해의 두 배에 달하는 5조원대를 유지하는 등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부가 각종 투자유인책을 제시한 코스닥 벤처펀드가 출시 10일 만에 설정액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코스닥시장을 중심으로 중소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중소벤처 활성화 정책에도 코스닥 기업들에 드리워진 그늘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실적 없이 덩치만 커진 중소 바이오 종목들이 ‘묻지마 투자’의 머니게임에 노출되며 거품 붕괴 직전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대부분 헬스케어 업종으로 채워진 코스닥시장은 버블이 터지면 시장이 침체되는 것은 물론 투자자들의 신뢰도 함께 잃는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코스닥 상장사를 대표하는 코스닥협회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정부가 시장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코스닥시장의 투기적 성향만 키웠을 뿐 실제 기업들의 업황 개선에는 무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증권가의 최대 이슈였던 감사 선임 부결 문제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은 현실적으로 여건이 안 되는 중소벤처기업들에 큰 부담이다. 김재철 코스닥협회장은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이 실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시장은 살려놓고 기업은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청년 정규직을 신규 고용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의 중소기업 채용 정책도 일회성 지원에 그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김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코스닥협회는 연초부터 섀도보팅 없이 치러질 주주총회에 고민했다. 섀도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를 대신해 의결권을 대리 행사하는 제도인데 지난해 말 폐지되면서 상장사들의 주총 안건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의결권이 부족한 기업들이 전 직원을 동원하고 대행사에 돈을 주고 계약을 통해 개인 주주들을 직접 찾아가 의결권 위임을 부탁하는 촌극이 벌어졌다”며 “개인투자자 비중이 90%에 달하는 코스닥 기업들은 주총을 여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고 밝혔다. 현재 상법상 주총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과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1 이상 찬성이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의 경우 시세차익에만 관심이 있는 소극적 투자자가 대부분이어서 주총에 참가하는 사람이 드물다. 섀도보팅이 폐지되며 주총 개회 자체가 불가능한 기업이 나왔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3%룰’로 묶여 있는 감사 선임 문제다. 3%룰은 회사의 감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와 특별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쳐 의결권을 3%밖에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로 외부 감사에 대한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묶이면 감사선임과 관련해서는 안건을 통과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감사 미선임은 상장폐지 사유가 되기 때문에 논란이 돼왔다. 김 회장은 “3%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라며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라는 목적에 비해 과도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열린 올해 상장사 정기주주총회에서 76개 기업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감사 선임 등 안건 통과가 부결됐는데 대부분이 코스닥 상장사들이었다. 김 회장은 “중소벤처기업들이 주주총회 때마다 의결권 확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주주와 숨바꼭질을 하며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경제 정책에 관해서는 코스닥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실제 중소기업들의 역량을 키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우선 김 회장은 “KRX300지수 도입과 상장지수펀드(ETF), 선물 상품 증가로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늘어나 코스닥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코스닥 기업이 한발 앞서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관해서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코스닥 기업들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는 2020년부터 300명 미만 사업장에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데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기업 경영이 불가능하다”며 “채용 관련 자금 지원을 정부가 계속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일회성 지원에 기대어 채용을 늘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코스닥지수 상승에 회의적이다. 그는 “일부 바이오 업종 등의 주가가 오르며 코스닥지수가 급등했지만 기업들의 경영 상황은 오히려 악화됐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시장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사업연도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적자를 시현한 기업은 38.21%에 달했는데 이는 재작년의 30.22%보다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김 회장은 “전체적으로 보면 전년 대비 매출액과 기업이익이 늘어 상장사의 실적이 좋아졌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오히려 늘어났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관련 반도체 기업들의 영향을 받은 부품 업체들을 제외하면 실적 증가 효과가 고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와 같이 투자 시장만 커지고 기업 내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코스닥 활성화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칫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이 겉보기만 화려한 전시행정이 될 수 있다”며 “시장만 살려줄 것이 아니라 기업을 살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바이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최근 증권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바이오 회계감리 문제에 대해서도 중소기업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1996년 원료의약품 전문기업 에스텍파마를 창업해 현재도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제까지는 연구개발(R&D), 기술 전문으로 상장이 가능하게 해놓고 금융당국의 제재가 심해지니 회계법인들이 기준을 엄격하게 바꿨다”며 “바이오 기업의 R&D 자산가치를 인정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대부분을 바이오 기업이 차지하는 현실에 관해서도 김 회장은 그만큼 관련 헬스케어 업종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이오 기업에 대한 집중은 그만큼 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감과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고 이는 전 세계 산업의 트렌드이기도 하다”며 “정부의 장려 정책이 뒷받침돼 코스닥시장의 주도 업종으로 바이오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코스닥협회장 차원에서 코스닥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적극적 의결권 행사와 장기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기업은 이익을 창출해 투자자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본질이며 투자자는 주주로서 고유권한인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며 “개인투자자들이 의결권을 행사해 주총으로 애로사항을 겪는 코스닥 상장사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가치를 보고 장기적 투자를 할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보다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인내하는 금융’이 자본시장을 키우고 투자자들에게도 장기적인 이익을 준다”며 “단기적·투기적 투자가 아닌 장기 성장 가능성을 살펴 코스닥시장에 투자하기를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정리=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60년 강원도 삼척 △1978년 동북고등학교 졸업 △1983년 고려대 화학과 졸업 △1983년 태평양제약 중앙연구소 △1999년 에스텍파마 설립 △2012년 한국생산성본부(KPC) 전국총교류회 회장 △2014년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부회장 △2014년 경기도야구연합회 회장 △2010년~2017년 2월 코스닥협회 이사·부회장·수석부회장 △2017년~ 코스닥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