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업회생절차는 파국 아닌 새 출발..살릴 준비됐으니 적극 신청을"

[전문법원장에게 듣는다] <2>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

채권은행, 소액주주·노조 반대탓

부실 쌓여도 시간 미루며 소극적

한국형 P플랜·S-트랙 등 활용땐

빠른 구조조정으로 시장 복귀 가능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 인터뷰./송은석기자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이경춘 서울회생법원장은 느닷없이 마이클 잭슨 얘기를 꺼냈다. “1996년이었던가요.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을 반대하는 소비자 단체에서 티켓 예매 업무를 보던 은행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펼쳤죠. 몇몇 은행은 자신들이 공연을 추진한 것도 아닌데 여론을 의식해 예매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이어 “기업 회생도 똑같습니다. 죽어가는 기업을 살리려면 과감히 회생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주채권자인 은행들은 소액주주와 노조의 반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고 덧붙였다. 기업을 살릴 제도는 마련돼 있는데 제도 밖 여론 때문에 정작 활용 시점을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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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원장은 최근 취임 1년과 서울회생법원 개원 1주년을 동시에 맞았다. 지난해는 대우조선해양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을 신청하기 직전 사채권자들과 자구안에 합의하면서 법원의 회생절차를 피했다. 올해 들어선 금호타이어·STX조선해양이 회생절차 신청 직전 극적인 노사 타협을 이뤘고 한국GM도 진통 끝에 23일 노사 합의를 끌어내 회생절차를 넘겼다.


부실 기업과 노조는 “파국을 피했다”고 좋아하지만 이 법원장은 “회생절차를 파국이라 보는 기업과 노조의 인식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 법원장은 “회생절차는 극도로 부실한 기업들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도록 법원이 정비하고 짧고 집중적인 구조조정을 해주는 것”이라며 “GM 본사 같은 미국 기업은 과감하고 신속한 회생절차를 통해 부활했는데 국내 여론은 ‘회생절차는 곧 파국’이라고 협박한다”고 강조했다. 회생절차를 피한 기업들은 부실을 털 시간을 미뤘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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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 법원장은 기업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채권은행들의 소극성을 아쉬워했다. 정부는 회생절차가 몇 년씩 길어져 회생 기업들이 영업·자금조달에 제한받는 일이 없도록 2016년 8월 한국형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을 도입했다. 회생절차 신청 전 기업·채권자가 계획안을 미리 마련하도록 해 1~2개월 내 회생절차를 끝내고 정상 기업으로 돌아가는 제도다. 서울회생법원의 첫 P플랜 사례인 레이크힐스순천 골프장은 회생 절차 개시부터 인가 결정까지 단 47일이 걸렸다.

이 법원장은 “기업회생 제도가 준비돼 있으니 기업들은 적시에 이용해 신속히 구조조정을 마치고 시장으로 돌아가면 된다”며 “기업회생의 결정권을 쥔 국내 채권은행들은 회생 절차를 무조건 반대하는 사채권자·소액주주·노조에 둘러싸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채권은행들이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면 P플랜을 이용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지금보다 확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법원장은 “회생절차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면 회생법원이 도산 절차의 허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회생법원은 중소·벤처기업 맞춤형 회생제도인 ‘S-트랙’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S-트랙은 기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등 지원 제도를 법원에 모아 회생 기업에 연결해주는 제도다. 이는 부채 150억원 미만 중소기업이 대상이다. 회생법원은 또 고용노동부·가정법원 등과 연계해 개인회생·파산 신청자들의 취업교육을 지원하면서 이들이 양육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법원장은 “한 가지 고민은 금융권이나 경제 당국에 기업·개인 도산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라며 “회생법원 소속 34명 법관은 발로 뛰며 당국·은행과 교류하고 회생 절차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송은석기자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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