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채무자대리인제도 도입, 누굴 위한 건가

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

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김희태 신용정보협회장



최근 국회에는 채무자대리인제도의 적용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채무자대리인제도는 채무자가 변호사·법무법인 등을 대리인으로 선임하면 채권자는 대리인에게만 연락할 수 있고 채무자에게 직접방문·우편·전화 등 일체의 접촉을 못하며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대부업자에 한해서만 적용되고 있는데 적용 대상을 대부업자뿐만 아니라 신용정보회사를 포함한 모든 금융회사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불법추심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채무자대리인으로서의 구체적인 업무나 책임·의무사항도 전혀 없고 단지 채권자의 접촉을 차단하는 역할만 하는 이 제도의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자칫 악덕 채무자의 고의적 채무불이행과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게 되면 채무자는 채무변제를 회피하게 되고 연체율 증가를 우려하는 금융회사는 담보대출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또 금융회사는 연체율이 증가할 것을 감안해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율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 결국 성실하게 채무를 변제하는 대다수의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도 있다. 담보가 없는 저신용자는 결국 불법 채권추심의 위험이 도사리는 금융 제도권 밖 미등록대부업자나 불법사채업자에게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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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 제23조에서 보장하는 채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도 있다. 채권자의 채권도 헌법상의 재산권에 해당하는데 채무자의 사생활과 채권자의 재산권과 같이 기본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헌법재판소는 정당한 목적, 적합한 수단, 기본권 침해 최소화, 법익의 균형 등을 갖춰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현재 신용정보회사는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과 금융감독원의 가이드라인,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협회의 자율규제심의위원회 등에서 엄격히 규제하므로 불법추심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만약 위반 사례가 발견된다면 더욱 엄중한 제재를 하면 되는데 정당한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금융산업 전반에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는 채무자대리인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채무자 보호를 위해 개인회생, 파산·면책, 개인워크아웃, 국민행복기금 등 다양한 공적 채무조정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다. 신용정보협회도 자체적으로 ‘자율적 채무조정 지원’ 제도를 만들어 회원사들이 채권자와 협의해 채무감면 및 컨설팅으로 사회적 약자인 채무자를 보호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의 포용적 금융정책으로 생계형 채무자에 대한 채무탕감이 확산되는 추세이므로 많은 부작용을 무릅쓰면서 채무자대리인제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은 더욱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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