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서 終戰 선언 추진
주변국 협력과 지원 이끌어내야
튼튼한 국방·외교력 토대 삼아
모두 이기는 ‘윈윈게임’ 만들자
27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측 판문각을 넘어 높이 5㎝, 폭 50㎝의 콘크리트 경계석(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첫 악수를 나눈다. 이어 남측 평화의 집 방명록에 서명한 후 2층 회담장에 입장하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놓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취재를 요청한 국내외 기자들만 3,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이런 모든 순간이 TV로 생중계된다니 김 위원장 역시 자신을 주시하는 전 세계인들 앞에서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쏟을 것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과거에 비해 한결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청와대는 이번 회담에서 종전(終戰)선언 추진과 군사적 긴장 완화, 신뢰 구축 방안 등을 폭넓게 논의한다는 복안이다. 1953년 정전협정에 명기된 대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군사적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한 최후의 평화적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는 셈이다. 역대 정부들도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번번이 실망감만 안겨줬을 뿐이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문제다.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자면 남북은 물론이거니와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사안 하나하나가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 4대국의 외교·안보 이익이 교차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한반도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바로 주변 강국들이다. 19세기 후반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은 당시 조선의 외교전략으로 ‘친중국(親中國)·결일본(結日本)·연미국(聯美國)’을 제안했다. 그는 중국과 조선은 문자가 같고 정교(政敎)가 같으며 지리적으로도 매우 가깝다고 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작은 거리낌을 버리고 큰 계획을 도모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원래 남의 나라를 탐낸 적이 없으며 국력 또한 막강해 우방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봤다. 비록 이이제이를 기본으로 하는 중화질서의 국제관을 드러낸 것이지만 나름 주변 정세를 꿰뚫어 본 셈이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크게 보면 그때와 다를 바 없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질서라는 큰 그림에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리그릇 다루듯이 다뤄야 한다”고 했듯이 어느 한 국가라도 어깃장을 놓으면 판 전체가 깨질 수 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하나의 독일을 경계했던 유럽 각국과 러시아를 설득해가며 동서독 간의 평화 정착과 유럽 전반의 공존을 이끌어냈다. 그의 과감한 결단력과 승부사적 기질이 빛을 발한 것이다. 반면 핀란드가 강국의 눈치나 살피면서 자국의 이익을 양보하고 종속적 관계를 면치 못했던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우리로서는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각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평화 정세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사드 철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지금은 북핵·미사일 위협에서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다. 방어용 무기라면 확실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더욱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결국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진정한 역량은 우리의 튼튼한 국방·외교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는 양보나 선언문이 아니라 힘을 통한 당당한 평화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과도한 기대와 흥분도 그렇거니와 지나친 낙관론 역시 경계해야 한다. 11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남북 정상회담이 모두가 이기는 게임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