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약 산업 육성책의 하나로 올해부터 임상시험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의 방향성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까지 현재 6~8위권에 머물고 있는 글로벌 임상시험 점유율을 5위권 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임상시험 승인 절차의 간소화, 기간 단축, 임상 가능 의료기관 확대 등의 방안을 검토·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치료 기회를 확대하고 관련 산업을 글로벌 규모로 키우기 위해 규제 완화는 필수적이라는 산업계의 입장과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환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참여연대, 고용진·권미혁·윤소하 의원실은 지난 24일 토론회를 열고 정부의 임상시험 확대 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인체에 사용하는 일이기에 무엇보다 환자 안전이 강조돼야 하지만 정부는 온통 산업 육성 등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가 임상시험 점유율 늘리기에만 집중하고 정작 환자 보호는 등한시 하고 있다”며 “한국은 ‘임상시험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충분하지 않은 관리 감독 하에서 피해는 임상 참여자인 국민들이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도 “복지부가 임상시험 5대 강국을 목표로 대형 병원 중심의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어 주는 셈”이라며 “규제 완화에 앞서 안전 관리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산업계는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이 자국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해 임상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 다국적 제약사들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대응이 늦어질 경우 국민들의 신약 접근성이나 치료 기회가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임상시험은 불치병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뛰어난 효능의 미허가 신약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 “다국적 제약기업의 신약 임상시험이 축소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마지막 치료 기회를 얻기 위해 해외까지 나가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산업계 역시 환자 보호는 중요하다고 보지만 사전 규제가 아닌 사후 검증을 철저히 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데이터를 조작한다거나 불성실한 시험으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린 의료진 등에 면허를 영구 박탈하는 등의 강력한 제제를 가해 부정이 싹트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성공한 임상시험뿐 아니라 실패한 시험에 대해서도 보고서를 내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는데 이런 방식 역시 임상시험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