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여명-무덤에서 통곡할 정석(靜石) 조중훈

홍준석 산업부장

3세들 일탈...기업가 정신 실종에

대기업 소유·경영분리 절실해져

기업 뼈저린 자성노력 필요하지만

정부 일방적 몰아붙이기는 안돼

홍준석 산업부장

요새는 어딜 가나 온통 대한항공 갑질 사태 이야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숱한 갑질 만행과 명품 밀수 의혹 등 각종 위법 사안에 대해서는 기업인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비난과 함께 기업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겠냐며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며칠 전에 만난 굴지의 대기업 고위 임원은 “조현민의 물벼락이 재계에 날벼락을 몰고 왔다”며 “가뜩이나 반기업정서가 강한데 정부나 국민에게 비쳐지는 기업 이미지가 더 나빠질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에 대한항공이 불을 질렀다”며 “이 정권하에서는 꼼짝 말고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정답”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같은 기업인들의 걱정은 결코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반추해보면 기업의 곡소리는 역대 어느 정부 때보다 컸다. 법인세 및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정책 등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기업을 옥죄었고 일감을 몰아준 기업들의 고발을 비롯해 순환출자시대 종언, 초강력 지배구조 개선 압박 등의 재벌 개혁이 숨돌릴 틈 없이 몰아쳤다. 옥살이나 소송에 휘말린 기업인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번주에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반기업적 상법개정안과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 요구안을 들고 나와 기업들의 숨통을 더 조였다. 대관업무를 맡은 한 30대그룹 임원은 “요새 정부 정책이나 책임자의 발언 등을 보면 재벌 손보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재벌을 해체하겠다는 독기마저 풍긴다”고 토로했다. 특히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대한항공 갑질 사태가 빌미를 줘 재벌 해체 신호탄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한탄했다.

물벼락 쓰나미 앞에서 재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정권의 광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숨죽이는 것만이 능사일까. 재벌 해체를 떠올린 임원은 시대가 바뀌었고 국민 눈높이가 달라졌기 때문에 대기업도 달라져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번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비행에서 보듯이 소유와 경영의 확실한 분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피력한다. 오너는 대주주로서 기업을 소유하되 검증되지 않은 후대에게 경영권을 넘겨서는 안 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투명하고 공정하게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무임승차하는 오너 3·4세들은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게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는 많은 기업인의 고언이다. “3세들의 일탈은 지겹도록 듣고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밤새 고민하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편한 길만을 찾는 거죠. 기업가 정신은 할아버지나 아버지한테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대한항공 3세 경영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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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뼈저린 자성과 환골탈태에 함께 ‘재벌=적폐’라는 편향되고 그릇된 정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과거의 틀과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기업이 신나게 투자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게 사기도 북돋워주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방적으로 기업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나 골목 식당의 이모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다시 시행착오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난해 11월 이 칼럼에서 ‘추모의 계절에…무덤서 통곡하는 창업주들’이라는 제목으로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15주기 추모식을 맞아 기업가 정신을 되새긴 바 있다. 해방 직후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해 ‘수송보국’의 신념으로 땅·바다·하늘길 개척에 평생을 바쳤지만 기업을 적대시하는 현 정부와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세태를 보노라면 정석이 무덤에서도 땅을 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6개월여 지나면 또다시 정석의 추모일이 돌아온다. 이번 추모식에서는 부디 정석이 통곡하지 않도록 후손들을 비롯해 많은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나는 그런 광경을 기대해본다.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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