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차이나’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3월 말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격상하기로 합의했고 상생협력 강화 차원에서 오는 2020년까지 교역 1,000억달러 시대를 위한 액션플랜을 마련하는 등 경제협력은 더욱 심화되는 추세다. ‘신(新)남방정책’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한 베트남은 이미 중국·미국에 이어 한국의 3대 수출 상대국이다. 지난해 40%가 넘은 수출 증가율이 지속되면 조만간 2위 수출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베트남의 올해 1·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7.4%를 기록, 아시아 톱 수준에 달한다. 높은 성장률은 주식시장 활황으로 이어져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크게 늘어났고 지난 1년간 베트남 펀드 수익률은 주식형 해외 펀드 중 최대 실적인 50%를 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베트남 경제협력과 시너지 창출의 가장 중요한 촉매제는 우리 기업의 베트남에 대한 해외직접투자(FDI)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직접투자가 한·베트남 경협의 성공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특히 단일 기업으로 최대 투자자인 삼성전자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총 17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로 16만명의 일자리와 연 580억달러 매출을 올려 베트남 총수출의 4분의1을 점하면서 베트남을 세계 2위 스마트폰 수출 국가로 이끄는 한편 베트남 공장의 높은 생산성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트남 경제의 근대화는 1986년 도입된 ‘도이모이’라는 개혁개방 정책 슬로건에서 시작된다. 변경한다는 의미의 ‘도이’와 새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 ‘모이’가 합쳐진 쇄신정책의 일환으로 베트남은 FDI 도입을 핵심 성장전략으로 삼으라는 세계은행 권고를 적극 받아들여 산업화를 앞당긴 국가다. 30년 전 당시 세계은행 책임자로 정책자문을 했던 필자로서는 우리나라가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이 된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 기업은 지난 10년간 베트남에 들어간 1,000억달러 이상의 FDI 자금 중 3분의1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국민총생산(GDP)의 8%에 달하는 베트남의 FDI 유입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풍부한 노동력과 유연한 노동시장이 대표적 강점으로 꼽힌다. 베트남 국민의 평균 연령은 29세로 40세를 넘어선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젊다. 1억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빠른 소득 증대로 급속히 늘어나는 소비시장도 큰 매력이다. 연평균 6~7% 수준의 견고한 경제성장률에다 공산체제하에서도 실용주의적 친기업 정책을 유지해온 것 또한 성공요인이고 동남아 최저 수준의 법인세와 규제완화도 일조했다.
그러나 신흥국의 FDI 패러다임은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진화하기 마련인 만큼 지금은 과도한 투자열풍이나 쏠림현상을 경계하고 양국 경제협력의 ‘윈윈 모델’을 위한 장기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베트남의 본격적 임금 상승 추세와 환경 문제에 민감해지는 상황을 감안할 때 전통 제조업은 4차 산업혁명 관련 미래형 산업으로 고도화, 금융회사의 현지화 사업 확대를 통해 금융·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로 다변화, 그리고 한류 문화 확산 분위기를 살려 급성장하는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한·베트남 경제협력에 더욱 주목할 이유가 있다. 공산체제하에서 시장경제 도입을 추진해온 베트남과의 유대관계는 대북 경협에도 시사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회담 성과에 대한 속단은 이르다. 그렇더라도 결국 북한의 개방체제 전환은 불가피하고 북한 경제개발은 베트남(또는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이 현실적 대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남북 경제공동체’ 구상을 위해서도 주변국 공조나 국제기구 지원과 함께 베트남 등 ‘체제전환 경제(transition economy)’와의 개발협력은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