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을 찾은 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봄비의 수준을 뛰어넘는 굵은 빗줄기에 바람까지 더했다. 취재를 나서기 전에 바라본 동해는 빗줄기 너머로 하얀 파도를 쉴 새 없이 육지로 밀어붙였다. 우산을 써도 비를 가릴 수 없었다. 빗줄기는 위에서 내리지 않고 옆에서, 앞에서 수평으로 날아왔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취재를 다녀야 하나’ 막막한 가슴을 부여안고 밖으로 나섰다.
영덕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게다. 하지만 대게철이 지금은 막을 내렸으니 아쉬운 마음으로 ‘블루로드’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영덕 블루로드’는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688㎞의 도보 코스인 해파랑길 가운데 영덕을 지나는 64.6㎞의 해안길로 영덕에서는 대게 못지않은 아이콘으로 꼽히는 곳이다.
영덕 대게공원을 출발해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코스에 들어서자 얄궂게도 비바람이 거세졌다. 떠나는 봄이 못내 아쉬운 것일까. 파도소리마저 거칠기 짝이 없다. 블루로드는 남쪽부터 시작되는데 가장 아래쪽 D코스는 대게공원에서 강구터미널까지 14.1㎞, A코스는 터미널에서 해맞이공원에 이르는 17.5㎞, B코스는 해맞이공원에서 남씨 발상지까지 15.5㎞이며 C코스는 남씨 발상지에서 고래불해수욕장의 17.5㎞ 구간이다.
시작인 D코스에서 삼사해상공원을 살펴보려고 했지만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비바람이 너무 거셌다. 사진을 찍으러 나섰다가 비바람에 밀려 차 안으로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차 안에서 바깥풍경을 구경하다가 비가 약해지기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그렇게 시간만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여행에는 늘 반가운 변수가 생기기 마련. 비를 피해 들어간 A코스 구간의 강구항과 시장의 풍경은 한없이 정겨웠다. 때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장에는 생선·푸성귀 등을 좌판에 깔아놓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매달 3·8·13·17·23·27일에 장이 서는데 지난 2003년도에 시장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설 시장 겸 오일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일대의 주력 점포들은 대게를 판매하는 어물전·횟집들이다. 강구시장에는 4~5곳뿐인 어물전들이지만 포구 쪽에는 무려 200곳의 점포들이 진을 치고 있다. 대게 전문식당가로는 기자가 가본 곳 중 가장 큰 규모다. 가격은 횟집에 비해 지하 어물전이나 시장에서 구입해 세팅 비용을 내고 조리해 먹는 것이 저렴한 편이다.
대게는 고성에서부터 포항까지 동해를 대표하는 메뉴지만 “집하 물량으로 치면 포항이 제일이고 전문식당의 숫자는 영덕이 가장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게 원조마을이 영덕에 있는 것과 관련해 권영숭(68) 문화관광해설사는 “영덕에서 나는 대게를 고려 태조 왕건에게 진상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며 “대게 어장인 왕돌잠이 축산 앞바다에서 후포까지 걸쳐 있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울진 게가 맛있네, 영덕 게가 맛있네 하는 시비가 붙기도 하지만 같은 바다에서 게를 잡은 배가 울진에 부리면 울진 대게가 되고 강구에 부리면 영덕 대게가 되는 것”이라며 “다 같은 대게인데 맛이 다를 리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A코스의 또 다른 명소는 풍력발전단지다. 연간 10만㎿를 생산하는 풍차 24기가 2005년에 조성된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영덕군 2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풍력발전단지는 산업적 가치뿐 아니라 수려한 경관으로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기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비바람이 거센데다 안개가 짙어 바로 앞에 있는 풍차 정도만 식별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단지 인근에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있어 자녀를 동반한 관광객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B코스는 해맞이공원부터다. 경관이 좋아 2013년 국내 관광지 100선 중 12위에 뽑히기도 했다. 해맞이공원에는 야생화와 꽃나무 900여그루가 식재돼 있다. 해안도로와 바다에 이르는 길은 나무계단과 데크가 설치돼 보행에 편리하고 전망 데크가 두 곳이 있어 동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적당하다. 해맞이공원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창포말 조형 등대가 아름답고 이 등대를 담아 일출을 촬영하면 작품사진이 나올 수도 있다.
/글·사진(영덕)=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