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청와대의 진화에도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더라도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 성격이 바뀔 경우 그 지위와 역할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유지군은 동맹군과 달리 우리 군이 공격 받았을 때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다 북한이 철수하라 요구할 경우 철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반도 안보 지형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北 주한미군 철수 ‘선포’의 의미는=북한은 지난 2016년 7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제시한 비핵화 5대 조건에서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요구했다. 일각에서는 철수 기한이 명시되지 않은 철수 선포는 사실상의 ‘주둔 용인’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주한미군의 감축 등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한 철수 선포만으로도 극심한 남남갈등이 유발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유지군’으로 전환하나=남남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나리오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 바꿔서 계속 주둔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 정전협정에 따라 비무장지대(DMZ)를 관리 중인 유엔군은 종전 시 주둔의 근거가 사라지고 당사국인 남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주한미군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북한이 주한미군의 평화유지군 전환에 동의를 해줄지부터 의문이지만 남북한이 합의를 이뤄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평화유지군은 중립적 입장에서 철저한 감시 역할에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군이 우리 영토를 침범한다면 주한미군은 국제법상 동맹군으로서 전쟁에 개입할 수 있지만 평화유지군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다. 더구나 남북한의 동의하에 주둔하는 평화유지군은 한쪽 당사자인 북한이 ‘철수하라’고 요구할 경우 철수해야 한다. 평화유지군으로 전환되면 주한미군 감축 역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에 평화유지군과 동맹군의 성격을 모두 부여하는 방안도 있다. 주한미군의 일부만을 분리해 DMZ에 주둔시키고 나머지는 동맹군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이나 남남갈등을 차단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방안이지만 북한이 여기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한미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줄어들 듯=한미 연합훈련의 규모와 성격도 종전과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미 양국 군은 올해 연합훈련에서 이미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최소화하고 공격보다 방어 위주로 진행했다. 훈련 기간도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4주로 줄이고 핵추진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투입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남북 평화체제 구축이 진행될 경우 이러한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미국은 전략자산의 전개 비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