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지난 104년간 우리은행이 맡았던 서울시금고지기 자리를 차지했다. ‘전략가’인 위성호 신한은행장은 6개월 전부터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치밀하게 준비했고 이날 프레젠테이션(PT)을 위해 동남아 출장 중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곧장 필리핀으로 떠나는 ‘007작전’을 펼쳤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시는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를 열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을 각각 1금고(일반·특별회계 관리 31조8,141억원), 2금고(기금 2조2,529억원) 운영 은행으로 선정했다. 이들 은행은 내년부터 오는 2022년까지 4년간 서울시금고 운영을 맡게 된다. 서울시가 복수금고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0년 서울시금고 입찰경쟁부터 참여해온 신한은행은 3수 끝에 금고 은행 타이틀을 따냈다. 신한은행은 사전에 서울시민에게 부족한 수납시스템을 분석, 이택스시스템(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시스템) 등 새로운 제안을 다양하게 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안정적으로 가는 게 안전할 수도 있지만 서울시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있어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 게 준비된 은행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금고지정 심의위원회는 대내외적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 대출·예금금리, 시민 이용 편의성, 금고업무 관리능력, 지역사회 기여와 시 협력사업 등 5개 분야 18개 세부 항목으로 평가했다. 신한은행은 2007년부터 인천시금고를 담당하며 자체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온 강점을 인정받았다. 서울시 내 24개 구금고를 우리은행이 전담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신한은행만이 용산구 1금고를 맡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준비해온 노력과 20여개 지자체 금고를 운영한 경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서울시민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서울시와 다양한 협력을 하는 한편 1금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당초 예정보다 빠른 이날 PT가 열리면서 위 행장은 인도네시아에서 급거 귀국해 몇 시간 머문 뒤 곧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평소 사석에서 “무리하지 않겠다”고 느긋함을 보였지만 철저하게 준비된 ‘전략가’다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년간 맡았던 국민연금 주거래은행을 우리은행에, 경찰공무원 대상 참수리대출은 KB국민은행에 연거푸 빼앗기며 자존심을 구겼다. 심기일전 한 위 행장은 연말 조직개편을 통해 개인그룹에 속해 있던 기관영업 부문을 기관그룹으로 확대 개편했고 주철수 부행장을 그룹장으로 전면 배치했다. 그 결과 올해 들어 홍익대 주거래은행으로 선정되며 순조로운 기관영업 행보를 보였고 서울시금고까지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서울시 구금고 입찰 경쟁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위 행장은 “기관고객 영업에 있어 긴밀한 협업과 촘촘한 영업을 통한 토털 마케팅을 바탕으로 신한이 지켜온 은행권 최고의 영업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은 2금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그간 독점해온 서울시금고지기 타이틀을 내주게 됐다. 기금운영을 담당하는 2금고의 관리 규모는 2조원 수준이다. 서울시금고 선정을 앞두고 전산 오류가 발생한 점은 뼈아픈 악재가 됐다. 지난 3월 우리은행이 관리하는 서울시 지방세 납부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해 70만명에게 잘못된 고지서가 발송된 바 있다.
1금고 출연금은 신한은행이 3,000억원, KB국민은행이 2,000억원대, 우리은행이 1,00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한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은 1·2금고에 동시 지원했고 KEB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2금고에만 지원했다. KB국민은행은 이번에도 서울시금고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은행들은 시금고를 맡으면 정부 교부금, 지방세, 기금 등을 끌어들일 수 있고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 업무를 하며 수익을 얻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또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영업을 통해 부수적으로 고객 확보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황정원·김정욱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