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저스와 함께 ‘정보기술(IT) 성공신화’를 써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기차 시장과 민간우주 산업을 주도하며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린 그였지만, 최근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주가가 곤두박질 치면서 ‘괴짜 억만장자’의 명성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이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보이고 있지만 머스크 CEO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5일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2일(현지시간) 올해 1·4분기 실적 발표에서 8억달러(8,6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테슬라가 6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기록한 가운데 현금 고갈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테슬라는 올 1·4분기에 현금 7억4,5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지난달 투자은행인 제프리스는 보고서를 통해 “테슬라가 현금 고갈을 막기 위해 올해 25억∼30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테슬라의 현금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며 테슬라 등급을 B3로 낮췄고,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강등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테슬라 주가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테슬라는 실적발표 하루 뒤인 지난 3일 뉴욕증시에서 284.45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전날보다 5.5% 급락했다. 지난해 9월 고점 389.61달러까지 치솟았을 때와 비교하면 시가총액은 7개월여 만에 25% 증발했다. 회사채 가격도 지난해 9월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7개월여 만에 분위기가 급변한 주요 원인은 테슬라가 생산 차질로 시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머스크 CEO가 지난해 말까지 보급형 전기차 ‘모델3’를 주당 5,000대 출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생산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일정은 올 3월에 이어 6월로 2차례 연기됐다.
회계최고책임자(CAO)가 최근 회사를 떠나고 볼트 부식 문제로 기존 출시된 ‘모델S’ 12만3,000대를 리콜하며 테슬라는 겹악재를 맞았다. 헤지펀드 빌라스 캐피털매니지먼트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테슬라가 4개월 내 파산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을 하기도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회사의 재정적자를 메워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모델3의 생산계획이 틀어지면서 테슬라는 현금이 바닥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테슬라 ‘모델X’ 운전자가 자율주행 중 사망하는 사고까지 터졌다. 지난 3월 38세 남성이 ‘모델X’를 운전하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사망했는데 당시 자율주행 모드가 작동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테슬라는 사고 책임을 운전자에게 돌리면서 논란을 불렀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도로 분리대를 인지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책임 전가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박한데도 머스크 CEO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머스크 CEO는 실적 발표날 성명에서 “회사가 결정적인 상승 직전 국면에 있다”면서 “모델3 생산을 위한 최신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올해 하반기에는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트위터에 부정적인 실적 발표 기사를 띄워놓고는 “라라라”(La la la)라고 써놨다. 지난달에는 “회사가 파산했다”며 만우절 농담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머스크 CEO가 실적 반등을 자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초조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 현금이 고갈되는 것 아니냐’는 애널리스트 질문에 머스크 CEO가 “지루하고 멍청한 질문은 좋지 않다”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이 대표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7개 증권사 중 10곳이 ‘보유’, 8곳이 ‘매도’ 이하 의견을 낼 만큼 테슬라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미 CNN머니는 “대담한 리더로 평가되던 머스크가 자본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위험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