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정규직 전환이 초래한 고용의 질 악화

정부의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이 고용의 질(質)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공시된 361개 공기업·공공기관의 3월 말 현재 고용현황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이 지난해 초보다 22.1% 줄었다. 이 수치만 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성과를 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감소가 정규직 증가로 연결되지 않고 반쪽짜리 정규직, 이른바 ‘중규직’만 늘었다. 지난 1년 3개월간 무기계약직이 무려 48.3%나 급증했고 소속 외 인력도 12.1% 증가했다. 소속 외 인력은 파견·용역·하도급 등 본사에 소속되지 않은 근로자다. 반면 같은 기간 정규직은 4.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예년 정규직 증가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감소가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과 소속 외 인력 증가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최근 공공 부문 무기계약직 실태조사 결과 무기계약직은 고용만 안정됐을 뿐 임금·승진 등 노동조건의 실질적 개선이 없는 또 다른 저임금 노동력 활용에 불과하다. 좋은 일자리는 늘리고 고용의 질은 높인다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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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얘기가 나올 때부터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정부는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그마저도 갈수록 고용의 질보다는 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런 상태니 현장에서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등 꼼수와 생색내기만 난무하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질 낮은 일자리만 늘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실속 없는 공공기관 정규직화에 매달리기보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서둘러야 한다. 그게 정부가 바라는 질 높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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