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그래도 119는 달린다

조종묵 소방청장




요즘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뉴스가 가장 큰 관심사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른바 ‘갑질’과 관련된 사건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그동안 ‘을’의 입장에서 참는 것이 당연시돼왔던 측면도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의무인가의 여부를 떠나서 누군가를 대할 때 정성을 다하는 것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고마운 일이다. 일본어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친절하고 정성껏 접대하는 일본 문화를 표현하는 말이다. 일본은 이것을 브랜드처럼 홍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공사를 불문하고 직장인들의 친절 서비스에 대한 정신과 자세는 일본 못지않게 높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했던 구호가 ‘고객은 왕이다’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을 마치 폭군처럼 행동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상관과 부하, 손님과 종업원, 강자와 약자 등등. 그것이 어떤 유형이든지를 막론하고 자신이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폭언과 폭행도 당연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했을 정도로 우리는 갑질이나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바로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얼마 전인 지난 5월의 첫날 소방공무원들은 또 한 명의 동료와 이별을 하는 슬픔이 있었다. 한 달 전 구급이송 중에 환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증세가 있어 치료를 받던 여성 119구급대원이 뇌출혈로 긴급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소방관이 되기 전에는 병원에서, 그리고 구급대원이 돼서는 19년 동안을 한결같은 자세로 헌신한 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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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화재를 비롯한 재난현장은 매우 다급하고 위중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소방관들은 시민의 입장이 돼 최대한 이해하고 덮어 주려고 애쓴다. 그래서 현장에서 거친 욕 한두 마디 정도 얻어먹는 것 정도는 속으로 삭히고 넘겼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정신적 장애를 발생시키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너무 큰 손실이다. 소방청에서는 이와 관련해 벌칙을 강화하고 호신용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검토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모두가 서비스의 수요자이면서 제공자이기도 한다. 무슨 위치에 있던지 간에 상대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 화합과 긍정에너지가 넘칠 것이다. 욕설과 폭행보다는 작은 도움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편지를 보내 주는 고마운 시민들이 훨씬 더 많기에 지금도 구급대원들은 큰 사고가 아니기를 기도하면서 출동했다가 보람을 안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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