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현대무용 경계 무너뜨린 '맨 메이드' 안무가 신창호 "4차산업혁명 시대 '인간의 의미' 춤으로 표현했죠"

현대·한국무용에 발레 DNA 접목

김병조·김미애와 파격 작품 구성

VR헤드셋 낀 무용수 무대 올려

"한국무용에도 다양한 문법 필요

차세대 방향 제시한 작품 되길"

국립무용단의 신작 ‘맨 메이드’ 안무를 맡은 신창호(왼쪽부터)와 조안무 김미애·김병조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호재기자국립무용단의 신작 ‘맨 메이드’ 안무를 맡은 신창호(왼쪽부터)와 조안무 김미애·김병조가 작품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호재기자



현대무용의 틀을 깨고 경계를 무너뜨려온 안무가 신창호가 국립무용단과 만났다. 주제부터 파격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겠다고 한다.

자연을 닮은 춤사위가 몸에 밴 한국 무용수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과 인공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VR(가상현실) 헤드셋을 끼고 춤을 춘다고 했을 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 건 비단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국립무용단 단원들도 마찬가지. 신창호가 이끌던 LDP무용단과 할 법한 주제를 굳이 한국무용수들과 하려는 이유가 뭐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렇다고 물러날 신창호가 아니다. LDP무용단 대표를 세 차례나 연임하며 ‘현대무용 팬덤 신화’를 써내려간 그다. 1년간 무용단의 주요 작품을 지켜보며 작품을 구상했고 카리스마 넘치는 왕언니 김미애와 발레리노 출신 한국무용수로 직접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 김병조를 조안무로 뽑았다. 한국무용은 물론 단원들과 외부 안무가를 잇는 가교역할을 할 이들이다.




안무가 신창호 /이호재기자안무가 신창호 /이호재기자


이들의 손에서 탄생한 ‘맨 메이드’(10~12일 LG아트센터)는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발레로 출발한 세 사람의 DNA가 합쳐진 새로운 몸짓이다. 인터뷰를 위해 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뜰아래연습실에 모였을 때도 세 사람의 안무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물론 아이디어의 출발은 신창호다.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스마트폰 메모앱을 열어 보였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두서없이 끄적이는데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자주 나오면서 가상현실 관련 메모를 많이 적어뒀다”며 “처음에는 한국무용수들과 테크놀로지와 미래, 인간과 인공의 공존 같은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지난 3월 국립무용단의 젊은 창작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 무대를 보고 ‘이게 바로 한국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냈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특히 영감을 준 무대는 김병조가 안무를 맡았던 ‘봄날’이었다고 한다. 당시 다양한 세대의 삶을 춤으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신창호는 “한국무용에도 다양한 문법이 필요한데 적어도 이번 실험을 통해 새로운 단어 하나쯤 더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또 “현대무용수들이 ‘맨 메이드’를 췄다면 뜨뜻미지근할 수도 있지만 자연을 닮은 춤사위를 강점으로 한 국립무용단이 인공을 이야기한다면 허를 찌르는 한 수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이후 작품 구상이 본격화되면서 세 사람은 경계를 허물고 타협점을 찾아가며 작품을 완성 시켜나갔다. 단적인 예가 6장으로 구성된 장면 구상이다. 1장에서는 무용수 각자를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로 표현하며 여러 개체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통일감을 보여준다면 2장에서는 오류 3장에서는 오류 수정을 통한 선택적 진화, 4장에서는 집합체, 5장과 6장에서는 경계와 해체를 주제로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가상의 존재가 현실로 들어와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신창호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감정을 한껏 실어 춤을 추는데 익숙한 한국무용수들을 위해 장을 구분하고 각각의 시놉시스를 공유해달라는 조안무들의 요청대로 처음으로 장면을 구성해봤다”며 “무용수들 중 한국무용수들만이 유일하게 장구나 북 같은 악기를 다루고 장단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춤을 추는데 이 점을 활용해 통일된 군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도 이번 작업의 큰 수확이었다”고 꼽았다.

이는 국립무용단이 2012년을 기점으로 안성수(‘단’) 테로 사리넨(‘회오리’) 조세 몽탈보(‘시간의 나이’) 등 국내외 현대무용 안무가들과 끊임없이 협업하는 이유기도 하다. 김미애는 “한국무용에선 흔하게 쓰는 잔걸음을 마치 버그에 걸려 정체된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며 “젊은 현대무용 안무가의 눈을 통해 우리 춤을 낯설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고 털어놨다.

늘 실험을 꿈꿨던 김병조에게도 이번 작품은 파격 그 자체다. 2장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그가 무용을 하면서 대사를 읊는 것부터가 큰 도전이다. 그는 “무용수 입장에서는 매번 같은 대사를 읊지만 관객들에겐 우리가 보여주는 몸짓과 대사가 매번 새롭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흥미롭게 느껴졌다”며 “한국무용에 익숙한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기대된다”며 웃었다.

VR 헤드셋을 쓴 무용수가 등장하는 5장은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주요 작품에서 주역을 도맡고 있는 이요음이 VR 헤드셋을 착용한 채로 무대 안쪽 복제 공간을 채우고 헤드셋 속 영상이 무대 전면에 투사된 가운데 박혜지가 이요음의 몸짓을 그대로 복제한다. 신창호 안무가로선 한국무용과의 첫 만남치곤 과감한 실험이다.

신창호는 “적어도 한국무용의 다음 세대를 이야기할 때 이 작품이 의미 있는 방향점을 제시해준 작품이기를 바랄 뿐”이라며 웃었다. 12일까지 LG아트센터

국립무용단의 신작 ‘맨 메이드’ 안무를 맡은 안무가 김미애(왼쪽부터), 신창호, 김병조. /이호재기자국립무용단의 신작 ‘맨 메이드’ 안무를 맡은 안무가 김미애(왼쪽부터), 신창호, 김병조. /이호재기자


서은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