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 골목상권도 변해야 한다

이종배 생활산업부장

젊은층 소비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유통가는 지금 생존경쟁 치열한데

골목상권은 보호그늘서 되레 퇴보

대규모 점포 막아도 살리기 힘들어

이제 정책 포인트 전환 고민해야




청소년들에게 전통시장은 어떤 의미일까. 십중팔구 부모님을 따라 어쩌다 가끔 물건을 사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한때 방과 후 놀이터였던 동네 슈퍼나 문방구도 지금 학생들에게는 그저 의미 없는 장소일 뿐이다. ‘없는 게 없다’는 현대식 대규모 종합 소매점인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다. 백화점을 찾는 20~30세대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생존의 기로에 선 백화점들은 젊은 고객을 한 사람이라도 유치하기 위해 식품관을 바꾸고 편집숍을 강화하는 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아예 백화점 1층에 식당가를 입점시키는 파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젊은 소비계층들이 바꿔놓고 있는 유통가의 풍속은 상상 외다. 온라인 성장과 인구 감소·고령화 등과 겹치면서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도 온라인몰에 밀려 속수무책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변변한 부동산이 없는 인터넷 쇼핑몰 회사의 기업 가치가 수조원을 웃돈다. 반면 전국에 수많은 부동산(매장)을 보유한 오프라인 업체의 기업 가치는 시쳇말로 ‘헐값’이다. 한 부동산 디벨로퍼는 “유통시설들이 꽤 매물로 나와 있다”며 “앞으로 오프라인 유통의 미래가 뻔한데 누가 매물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유통의 무게 추 이동은 매출에서도 잘 드러난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경우 매출이 수년째 제자리다. 반면 인터넷 쇼핑 매출은 올해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오프라인 업체들은 신규 점포를 늘리며 매출을 유지해왔는데 이것도 불가능해졌다. 새 정부 들어 유통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곳곳에서 신규 출점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유통 공룡들조차 화두는 생존이다. 그냥 생존이 아닌 ‘절박한 생존’이다.


현재의 이 같은 변화를 모 유통업체 고위 임원은 스마트폰에 비유했다. 스마트폰 선구자는 11년 전에 선보인 애플의 아이폰이다. 이후 전 세계 산업의 지형도가 작은 스마트폰에 의해 180도 변했다. 내비게이션 등 스마트폰 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산업은 한두개가 아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 같은 거대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유통 공룡들의 미래도 사실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살아남자.’ 이것이 현재 유통업체들의 절박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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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같은 변화에 민감한 곳이 있다. 바로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이다. 물론 변화를 모색하는 골목상권도 있지만 대다수 골목상권은 여전히 ‘대형 유통시설을 막고 규제해야만 자신이 살아남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자. 골목상권이 생존하기 위해 변신하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여전히 재래시장은 ‘재래(在來)’이다. 골목에서는 새로움을 찾기가 어렵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골목상권을 살린다며 쏟아부은 예산은 규모를 헤아리기 어렵다. 각종 지원 명목으로 국민의 세금이 골목상권 활성화에 들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골목상권의 대부분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대규모 점포가 들어설 때마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기부하는 ‘상생기금’은 또 어떤가. 현재 법이나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은 대규모 점포 개설 시 지역 상관과 협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 정도 상생기금 출연은 보편화돼 있다.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사용되는 기금이다. 그 많던 상생기금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된 것일까. 이런데도 대규모 유통시설이 들어선다는 ‘설’만 나와도 워낙 반대가 심하니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돈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롯데몰 군산점이 그렇다. 상생펀드를 조성해도 다른 상인들이 들고나온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이중규제에 신음하고 있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대규모 점포 규제는 지난 2010년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유통규제는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 이면에는 골목상권의 외침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골목상권이 무서워할 대상은 대규모 점포가 아닌 바뀌는 소비 트렌드다. 대규모 점포를 막는다고 골목상권이 살아나지 않는다. 수년간 지속 된 골목상권 보호 정책은 오히려 골목상권의 변화를 퇴보시켜왔다. 이제는 정책의 포인트를 바꿔야 할 때다. /ljb@sedaily.com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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