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하고 해군에서 복무했으며 사회에 나와서는 조선소에서 한 우물을 팠다. 필자에게 바다와 배는 삶 한가운데 있었고 삶 그 자체였으며 늘 함께 가는 도반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필자에게 최근 조선업계의 상황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조선산업은 표면적의 3분의2가 바다인 지구의 특성과 해운의 경제성으로 지난 1990년 이후 매년 4% 이상 지속 성장하는 산업이다. 조선산업은 세계 경제에 직접 영향을 받는 경기민감 산업이며 경기순환산업이다. 또 국제화 추세 및 해양주권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영속성을 가진다. 전후방 연관 효과 및 고용 효과가 큰 국가 기간산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국수국조’, 일본은 국적해운사 ‘자국발주’, 미국은 ‘존스액트(Jones Act)’ 등으로 자국 내 조선산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육성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의 조선업은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고 있다. 대형조선 3사의 구조조정과 중소 조선소들의 조업 중단의 결과로 조선소를 떠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울산·부산·경남·전남 지역의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저 넓은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풍랑을 예측할 수 있고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예측할 수 있듯이 조선산업도 세계 경제의 몇 가지 요소와 연동돼 얼마든지 예측과 위험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은 거대한 파도와 폭풍우가 예보됐는데도 냉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경영상황을 왜곡시켜 왔다. 지금 조선업의 위기는 자만과 방심의 결과이다.
지난 4월 초 정부는 각계각층의 두뇌를 모아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내놓았다. 경쟁 및 사업구조 개편 등 6대 추진전략을 수립했으며 다양한 실행방안들이 제시됐다.
다만 정부의 조선업 발전 전략이 조선업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산업이 몸담고 있는 생태계, 즉 시장의 특성은 세계적인 단일 시장, 세계 경제에 연동되는 경기 순환 시장, 주문생산 방식의 시장이다. 조선업 경쟁력의 근원은 기술인력, 조선 기자재 및 협력사 클러스트, 통합관리 능력 및 운영 시스템에 있다. 특히 상생 성장을 통한 산업생태계 강화 전략은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전략임에도 정부 대책에는 국내 과제만 열거돼 있다. 조선산업은 세계를 아우르는 단일 시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건조된 대부분 선박은 해외로 수출되고 있으며 우리 조선기술의 지원을 바라는 여러 나라가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상생으로 영역을 넓히고 국내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세계시장의 생태계와 연결하고 조화를 이루는 더 넓은 시각과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