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조벽 숙명여대 석좌교수)
“우리 아이들은 삶의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무한경쟁의 사회로 내몰려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서울포럼 2018’ 이틀째인 10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융합형 신(新)인재’를 주제로 열린 첫번째 세션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대한민국 교육의 병폐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쏟아냈다. 토론자들은 획일적인 ‘모범 답안’만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경직된 관료 시스템이 지배하는 교육 현장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교육혁명을 위한 해법을 모색했다.
이날 토론 세션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느 중학교 1학년 사회 시험에 나온 문제를 소개하며 말문을 열었다. 박 의원은 “동남아 지역에 속하지 않는 나라를 객관식으로 묻는 이 문제를 보면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한 ‘무용한 지식’이라는 개념이 떠올랐다”며 “인터넷 한 번만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억지로 구겨 넣으면서 창의성을 죽이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교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당국자들이 ‘모라벡의 역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라벡의 역설’은 미국의 로봇 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이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에게 쉬운 것은 컴퓨터에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컴퓨터가 손쉽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박 의원은 “인간과 컴퓨터가 각자 잘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하고 인간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육성하는 것이 창의 교육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한국의 단편적인 주입식 교육은 ‘넓이는 상당하지만 깊이는 하나도 없는’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며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면 모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시민이 돼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독심술’만 있으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는 현재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며 “남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창의성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부사장이 ‘독심술’을 언급하자 이혜정 교육과혁신 연구소장은 기다렸다는 듯 최근 우리나라의 한 공립 중학교에서 출제된 미술시험 문제를 슬라이드로 제시했다. 이 소장은 “흑백으로 된 시험지인데 미술 작품의 명도와 채도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며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획일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듣고 공부하다 보니 무려 88%의 정답률을 보였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이날 토론에서는 교사 운용 방식이나 평가체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제언들도 쏟아졌다. 메가스터디 창업 멤버로 유명한 이범 교육평론가는 “지난 2010년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며 “학교 교사들은 이번 학기에 어떤 수업을 담당하고 몇 학년을 맡게 되는지 겨우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더라”고 소개했다. 이 평론가는 “그 이유를 물어보니 ‘교장 선생님부터 말단 교사까지 인사 일정부터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교육적 가치보다 행정적 편의를 우위에 두는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임진왜란을 가르치는 국사 선생님에게 일관된 교과 과정에 구애받지 않고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창의 교육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혜정 소장도 “더이상 ‘객관식, 상대평가, 기계 채점’으로 요약되는 한국식 수능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며 “유럽을 비롯한 교육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변화무쌍한 미래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나윤석·빈난새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