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스토리] "세상에 없는 혁신 탐험…'북유럽 스타일'서 미래가치 찾았죠"

<박종덕 북바인더스디자인코리아 대표>

학생시절 펜팔 통해 북유럽 첫 인연

디지털시대에도 '아날로그 품격' 여전

서울서 현지감성 느낄 문방구 차리고

가격 부담 줄인 카페 '피카'도 열어

내 공간서 새로운 삶 영감 받았으면

'리조토 쌀로 만든 비빔밥' 콜라보처럼

스웨덴에 한국DNA도 역수출 나설것

박종덕 피카 대표이사./권욱기자



# ‘피카(FIKA)’. 스웨덴어로 ‘커피 브레이크’라는 뜻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오후에 직장에서나 사무실·가정에서 보통 30분에서 1시간가량 휴식시간을 즐긴다. 이 시간 그들은 차와 디저트를 먹고 대화를 나누며 충전을 한다. 선진국 스웨덴의 상징인 여유와 평화로움·배려는 중요한 삶의 요소이며 동력이 되는 피카 타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스웨덴의 여유와 상상력을 가진 북유럽 전문가 박종덕(사진) 북바인더스디자인코리아 및 ㈜피카 대표를 최근 그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피카 카페에서 만나 북유럽에서 배운 아날로그 감성과 컨버전스, 미래 가치를 들어봤다. 박 대표는 90년 전통의 스웨덴 명품 문구 브랜드 ‘북바인더스디자인’을 지난 2007년 국내에 처음 소개하며 북유럽 열풍을 이끈 원조 멤버다. 또 가로수길을 비롯해 코엑스몰과 백화점 등에서 스웨덴식 브런치카페 ‘피카’와 국내 유일의 선물포장 전문 디자인 회사 ‘스칸폼’, 북유럽 전문서점 ‘타스크 북샵’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북바인더스디자인 문구점은 일곱 빛깔 무지개의 생생한 컬러와 박스·앨범·카드·포장지·연필 등을 파는 문구점으로 마치 선물가게를 연상시킨다. 이곳에서 디지털은 찾아볼 수도 없다. 지금처럼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는 시대에 왜 하필이면 ‘문방구’일까.


◇스웨덴의 파워는 세상에 없던 혁신 그리고 대상은 지구인=박 대표는 “인간 자체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먹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디지털 콘텐츠를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며 “북유럽인들의 아날로그적 삶이야말로 미래의 새로운 가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같이 덧붙였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을 내고, 구글이 홀푸드를 인수하고,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LP 싱글판을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 20대 친구들은 필름 카메라에 꽂혀 있어요. 느리게 인화하는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하는 20대 친구들을 보세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컨버전스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수준이 높고 깊이 있는 내용은 필름 카메라의 사진처럼 결국 아날로그 콘텐츠가 아닐까요.”

지난 세월 대표적인 북유럽 국가 스웨덴과의 교류에서 박 대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 북유럽의 킨포크라이프도 있지만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찰력을 통한 신융합, 즉 컨버전스다. 탐험가 마인드와 혁신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북유럽 사람들은 다양한 사물이나 자연을 결부시켜 현실 세계에 구현해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북유럽인들은 개선하지 않고 혁신하고 발명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상이 보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며 “그들이 공리와 공익을 추구하는 대상은 스웨덴·북유럽을 넘어 지구인이다. 단순히 개선하고 개조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것을 내놓아 인류가 새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내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유럽은 가구·인테리어·디자인·문화 등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완성도 높은 제도와 사회적 시스템, 복지, 교육, 대체에너지, 친환경 기술 등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 우리가 배울 만한 콘텐츠와 시스템을 갖춘 나라인 거지요. 그 나라를 벤치마킹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부조리와 병폐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느린 아날로그의 나라 북유럽과의 인연=스웨덴과의 인연은 영화 같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외 펜팔기구에서 받은 첫 친구의 국적은 스웨덴과 핀란드였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펜팔을 이어가며 그는 북유럽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펜팔 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박 대표는 미국이나 영국도 아닌 북유럽의 작은 나라가 어쩌면 이렇게 잘 살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호기심으로, 상상력으로 발전했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 직후 대학교 1학년 때 박 대표는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북유럽으로 훌쩍 떠났다. 펜팔 친구의 나라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를 한 달여 동안 여행하며 그는 온전히 북유럽에 반하고 돌아온다.

그는 미대 혹은 영화과 등 예술대를 나오지 않고 크리에이티브한 감성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이 광고라는 점을 알게 됐다. 대학 졸업 후 미국계 광고대행사 ‘BBDO’에 입사해 광고 AE를 하다 이후 독일계 최대 미디어그룹 베텔스만 한국지사로 옮기며 브랜드마케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베텔스만에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베텔스만북클럽’을 론칭하며 지금의 서점을 운영하는 기반이 되는 ‘도서’와 인연을 맺었다.

박종덕 피카 대표이사./권욱기자


◇국내 북유럽 열풍 이끈 ‘북바인더스디자인’=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제너럴모터스(GM)에 입사했다. 스웨덴 자동차 브랜드인 ‘사브’의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하면서 본격적으로 스웨덴과 인연을 맺고 수년간 사브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을 기획하는 등 북유럽 디자인과 문화에 심취하게 된다.


“큰 조직에서 한계를 느낀 무렵 스톡홀름에서 북바인더스디자인숍을 처음 만나게 된 거지요. 그 숍이 가구점인지 인테리어숍인지 처음에는 정체를 몰랐어요. 노트·박스·앨범 등 컬러풀한 천을 두른 문구류를 만지작거리며 현지인들이 느끼는 감성을 따라서 만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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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싱가포르 오차드 거리, 스위스, 도쿄, 파리 등 가는 곳마다 북바인더스 문구점이 보였다. 왜 서울에만 없을까. 서울에서도 많은 사람과 이 멋진 제품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1년간 스웨덴 본사 오너와 e메일을 주고받은 결과 드디어 2007년 당시 인적이 드문 가로수길에 1호점을 덜컥 오픈했다. 외국계 회사의 마케팅이사로 승승장구하던 남자는 그렇게 북유럽 문방구 주인이 됐다.

모두 말렸던 문구점은 디자이너·건축가·매거진에디터 등을 시작으로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첫해부터 잘 달렸다. 각종 백화점 유통사들의 러브콜이 오고 2년 만에 숍은 12개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북바인더스의 높은 가격대 때문에 대중이 향유하기 어려웠어요. 누구든지 북유럽 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뭔지 고민하다 2009년 스웨덴식 카페 공간 ‘피카’를 만들게 된 거지요.” 그는 “세계 최대 1인당 커피 소비국가가 핀란드와 스웨덴으로 하루에 4~5잔을 마신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며 “스웨덴 커피는 산도가 높고 로스팅이 진한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스웨덴 홈웨어, 선글라스, 시계, 아동복, 신발, 디자인 용품 등을 국내에 소개하며 북유럽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케아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와 가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컬래버레이션·컨버전스 시대…한국은 어디=47세의 그는 다시 이탈리아 밀라노 도무스아카데미 디자인전문대학원으로 날아가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남유럽에서 공부하면 정확하게 북유럽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는 그곳에서 마냥 게으르고 느려 터진 듯한 이탈리아 문화 속에 진정한 가치는 느리게 가더라도 깊이와 내면의 가치를 상호 존중하는 데 있다는 것을 터득했다. 한국과 달리 옛것을 닦고 쓰는 것이 강해 복원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옛것을 지키는 데 많은 것을 투자하는 나라였다.

박 대표는 10년 넘게 북유럽을 비롯한 유럽을 오가면서 한국의 DNA를 세계 곳곳에 충분히 이식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스웨덴 커피 문화, 문구, 라이프스타일에 영감 받아 한국인이 한국에 피카 카페를 만들어 한국식 피카 브랜드를 구현한 만큼 언젠가 한국 회사 피카 콘셉트의 커피 브랜드가 역수출되면 스웨덴에 한국 DNA를 심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북유럽의 실용적이고 단순한 미니멀 라이프스타일에 이탈리아의 세련미와 디테일이 접목되는 등 이미 유럽 국가들끼리는 인사이트를 나누고 디자인을 주고 받습니다. 컬래버레이션은 빅트렌드가 됐어요. 더 이상 순혈주의는 없습니다. 농악·아리랑·비빔밥·냉면·고추장·된장만이 한국적인 것은 아니에요. 이탈리아 옷감으로 한국인 테일러가 만든 ‘장미라사’가 이탈리아 브랜드가 아닌 한국 브랜드인 것처럼 말이지요. 상상컨대 리조토 쌀로 만든 비빔밥처럼 우리가 가진 독특함과 차별성에 세계인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대중적인 세련미와 감성을 더해내면 미래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소스가 될 것입니다.” 사진=권욱기자

박종덕 대표는

△1998년 서강대 언론학 석사 △1999년 전 베텔스만코리아 마케팅팀장 △2003년 IHMC호텔학교 호텔경영 전공, 미주 조선일보 기자 △2003년 전 GM코리아 마케팅부장 △2005년 전 HSBC은행 마케팅이사 △2008년 북바인더스 디자인 코리아㈜ 대표이사 △2009년 ㈜피카 대표이사 △2011년 주한 스웨덴상공회의소 이사 △2012년 한국스웨덴협회 이사 △2016년 도무스아카데미 브랜드디자인 석사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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