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 자주 다니는 중국 기업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 후 북한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주로 평양이 중심이겠지만 공장혁신이 본격화하면서 시중에 공급되는 제품의 양과 질이 나아지고 있고 잠자는 사자로 불리던 공장 책임자들도 철밥통을 깨고 경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500개가 넘는 북한 장마당에 공급되던 수준 낮은 중국 장마당 물건들은 현저히 줄었고 여기에 해외로 송출됐던 노동자들이 돌아오면서 일시적으로 외식문화가 확산됐으며 조그만 가게를 내는 열풍도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배급에 의존하면 굶어 죽는다는 경험을 학습한 결과이며 주민 스스로 ‘자력갱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후다. 아파트 욕조에서 오리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사전 예고 없이 일용소비재를 생산하는 혁신공장을 방문하는 일도 생산성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다. 공무원들이 낮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한편 공장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목욕탕·수영장·미용실 등 보사(保社)시설을 만들어 고용을 유지하는 한편 일반 주민들에게 이러한 시설을 개방해 소득을 보전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북한 시장 변화는 현재 ‘역진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김 위원장도 이러한 시장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을 위기 극복의 첩경으로 인식하면서 지난해 서둘러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하고 경제 건설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핵 보유 국가로 경제 건설을 이루겠다는 북한의 꿈은 이쯤 해서 접어야 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전략 전환을 선택한 것은 주동성과 피동성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총론에 동의한 배경도 여기 있으며 향후 과제는 과정과 속도를 얼마나 압축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여곡절이 나타난다면 전인미답의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낡은 정치관념을 혁신하는 사상해방의 어려움 때문이다. 사실 중국이 개혁개방 후 사상해방을 추진하면서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반사회주의로 낙인찍지 않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기틀을 만들기까지 14년이나 걸렸다. 북한도 중국과 비슷한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 위원장이 ‘핵을 버리기 위해 핵을 만들었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일반 주민들은 ‘이렇게 쉽게 핵을 버리려고 허리띠를 졸라맸는가’ 하는 자조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궤도에 올라탄 이상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우선 고려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계기로 시장의 활력을 통해 새로운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같은 선제적 행동에도 국제사회가 제재를 풀기까지는 더 많은 신뢰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진정성을 축적한다면 경제협력은 보다 빨리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북 경제지원의 열쇠를 가진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연내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고 가을에는 제4차 남북 정상회담 계기에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릴 수도 있으며 남북중이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함께 완성하는 동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 청사진을 조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실험 후 확산’ 로드맵을 먼저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생산기지, 중국의 원자재 공급, 한국의 설비를 결합할 필요가 있고 북한 경제 엘리트를 중국 훈춘 등지에서 교육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차선 변경을 시도할 때 국제사회가 길을 내주는 여유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