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쪽으로 노선을 바꾼 이유는 ‘고액 연봉도 최저임금 위반’, ‘최저임금이 오히려 임금격차 증대 야기’ 등의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5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열린 ‘최저임금정책’ 정책앤(&)지식 포럼에서 “정부의 임금억제 정책으로 기본급 인상 없이 난잡하게 만들어진 임금체계로는 연봉 4,000만원 아니라 8,000만원도 최저임금이 안될 수 있다”며 “정기상여금 부분은 산입 쪽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입범위를 둘러싸고 제기된 논란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잇달아 나오고 있는 연구 결과도 한국노총의 방향 선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은 기본급과 일부 고정수당 등으로 한정된 협소한 최저임금 산입범위로 인한 임금 불평등 가중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산입범위 개편 없이 최저임금이 7,530원에서 1만원으로 오르게 되면 대·중소기업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1,572만원에서 2,352만원으로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정기상여금 없이 1일분의 주휴수당만 받는다고 가정하면 최저임금이 7,530원일 때는 연봉이 1,889만원, 1만원일 때는 2,508만원이다. 반면 2일분 주휴수당과 800%의 정기상여금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는 같은 구간 3,660만원에서 4,860만원으로 오른다. 중기 근로자가 619만원 오를 때 대기업 근로자는 1,200만원 뛰는 셈이다.
결국 한국노총이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해야 한다는 각계 주장에 찬성표를 던지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저임금위원회의 내년도 최저임금 의결 시한인 오는 7월15일을 두 달 앞둔 이날 포럼에 함께 참석한 어수봉 전 최저임금위원장(공익위원)과 하상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사용자위원)도 정기상여금을 산입범위에 넣는 데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하 본부장은 “정기상여금 등 회사가 망하지 않으면 받는 금액은 최소한 산입범위에 포함돼야 한다”며 “하루빨리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속도는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최저임금위 위원에 위촉된 제11대 근로자·사용자위원이 언론이 참석한 공식석상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인상속도 등 현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용자와 노동자 측의 싱크탱크인 하 본부장과 정 본부장은 17일 전원회의를 시작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돌입한다.
특히 정 본부장의 발언이 주목받은 것은 그가 100만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가입해 있고 최저임금위 근로자위원 5명의 추천권을 보유한 한국노총의 정책본부장이라는 점이다. 바꿔말해 한국노총이 민주노총을 설득해내면 국회가 최저임금법을 개정함에 있어 ‘노동계의 반대’라는 걸림돌이 제거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확대개편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 본부장은 “최저임금위 위원들이 올해 3월까지 제도개편 논의를 했는데 거의 합의가 될 뻔했다 마지막에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했다”며 “사용자 측에는 경총만 있는 게 아니라 중기중앙회도 있고 노동자 측에는 우리뿐 아니라 민주노총도 있다. 그쪽에서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면서 합의를 못했다”고 전했다.
다만 산입범위 조정의 논의 주체와 관련해서는 노사 양측이 의견을 달리했다. 하 본부장은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하루속히 확대개편돼야 한다”며 사실상 국회가 빨리 법안을 처리해줄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 본부장은 “싸움을 일삼는 무능력한 국회에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맡길 수 없다”며 “정치인들이 하기보다는 최저임금위에 속한 위원들이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이미 국회로 넘어간 제도개선의 공을 다시 되가져 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어 전 위원장은 공익위원 위촉 방식에 대해 언급했다. 정부가 최근 위촉한 공익위원 가운데 ‘친노동’ 학자가 많아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은 비단 노동계의 이슈만이 아니다”라며 “노동부 장관이 산업계 인사, 기재부 장관, 복지부 장관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종합적으로 추천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