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당일인 16일 새벽 한미 연합훈련을 이유로 회담 연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없던 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는 대화에는 흥미가 없으며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3·4면
비핵화 협상을 준비 중인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허를 찔린 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운전대를 틀어쥐고 자기 방식대로 ‘협상판’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협상 각본을 다시 짜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미국에서는 ‘이게 바로 북한’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그간 대미 협상 때마다 유리한 칩을 더 쌓기 위해 수시로 판을 엎거나 흔드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다. 미국 타임지는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인용해 “북한이 양보를 더 끌어낼 수 있는지 트럼프 행정부를 시험하고 있다”며 “북한은 외부로 나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으며 경제발전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다가는 핵 거래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배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민들의 불만이 커지면 정권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경계감도 숨어 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비핵화 로드맵 눈높이를 낮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밴 잭슨 전 미 국방장관 정책자문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외교적 관여’라는 이름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한다거나 하면 북한은 더 많은 요구로 압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더 쉬운 목표물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