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는 ‘당신의 나의 금메달!’ 편으로 ‘승리 커플’로 불리는 박항승, 권주리 부부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다.
▲ 연애는 남자가 먼저 하자고 했다
2009년. 스스로 시골 남자라고 말하는 항승 씨는 서울 여자 주리씨와 소개팅에서 큰 실수를 했다. 강남역은 당최 가본 적도 없어 길거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한여름의 땡볕에 30분이나 지각을 했다. 벌서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끝내 전화번호도 묻지 못했다.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죠.”
지각한 주제에 연락처도 묻지 않은 남자. 화가 난 주리씨는 주선자를 통해 매너 없음을 항의했다. 하지만, 그게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좋은 친구로 지냈다. 2년 후, 남자가 사랑을 고백했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 결혼은 여자가 먼저 하자고 했다
승부욕이 강한 항승씨는 축구, 농구, 배드민턴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한번 시작하면 포기하는 법도 없다. 그런 그가 도전조차 하지 못한 운동이 있다. 바로 수영이다. 4살 때 8톤 트럭에 치여 오른팔, 오른 다리를 잃은 절단 장애인 항승씨는 본능적으로 물이 두려웠다.
하지만 주리씨는 팔, 다리 없이도 수영하던 외국인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항승씨도 할 수 있다고 믿고 수영장에서 데이트를 하며 진득하게 직접 수영을 가르쳤다.
“항승씨, 난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살아. 데이트하려면 스노보드를 배워야 할 텐데......”
“까짓거 배우면 되지. 뭐.”
절단된 다리로 스노보드 타기. 이번에는 주리씨가 반신반의. 항승씨가 적극적이었다. 처음 스노보드를 타러 간 날, 부츠를 신고 보드 위에 올라서는 데만 5시간이 걸렸다. 넘어져서 다치는 것은 기본, 의족을 신은 자리는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전문가들도 비관적이었지만 ‘승리‘커플은 좌절하지 않고 스노보드를 즐기며 사랑을 키웠다.
2015년, 권주리는 박항승과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 항상 승리하는 박항승
아내 권주리를 만난 이후 내 인생은 더욱 완벽해졌다. 연애 시절 그녀를 통해 수영과 스노보드를 처음 배웠다. 어려웠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존재이자 내 인생 최고의 장점이다.
스노보드 신발도 못 신던 내가 평창 패럴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당당하게 출전한다.
최고 성적은 세계대회 4위! 평창의 시상대에 올라설 수 있을까? 생계를 책임진 아내에게 부끄러운 경기를 뛸 순 없다. 3년의 무한도전, 이제 남은 것은 무한 질주 뿐이다.
수없이 되새긴 그녀의 이름을 외치며 비상하는 순간! 과연, 그는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주리씨가 없었으면 저는 선수가 될 수가 없었죠. 이런 도전을 할 기회를 제가 언제 얻어 보겠어요... 늘 ‘주리야 고마워, 사랑해’를 외치며 내려가고 있습니다.“
- 박항승 인터뷰 中-
▲ 큰 그림 그리는 내조, 주고 또 주는 권주리
연애 시절 그에게 먼저 보드를 권했지만, 국가대표까지 될 줄은 몰랐다. 기왕에 저지른 사고, 통 크게 쳐 보기로 했다. ‘3년 자유, 90년 노예계약’을 맺었다. 3년 동안 너의 꿈을 맘껏 펼쳐봐. 그런 다음 90년은 나에게 복종! 그의 꿈을 지원한 3년 동안, 연극 기획과 공연 등으로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이자 베스트 프렌드인 박항승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기에 후회는 전혀 없다.
물론 내가 비장애인이라고 모든 것을 희생하지는 않는다. 주방은 남편의 영역이다. 한 손 요리사인 남편은 각종 찌개, 볶음은 물론 탕수육 등 고난도 요리도 뚝딱뚝딱 잘 만든다. 각자 잘하는 영역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우리 부부만의 방식이다.
내 인생 ‘최대의 결심’이자 금메달보다 소중한 내 남편이 출발선에 서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응원을 준비하고 숨죽이며 기다리는 순간! 출발선을 넘은 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인생의 한 번쯤은 미쳐볼 만한 도전의 시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항승씨는 저의 친구로서 그런 시간이 지금까지 없었다는 게 너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3년을 내가 책임져 줄 테니 너는 마음대로 갔다 와라.”
- 권주리 인터뷰 中-
▲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
“항승이의 오른쪽 팔 없는 옷소매 바람에 휘날릴 때는 얼마나 귀여운데요!”
연애부터 결혼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했다.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 앞에서 우린 더욱 당당했고 나의 장애마저 내 아내는 사랑스러워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날 때가 되어간다. 이제 그 성화(聖火)가 꺼지면 내가 90년간 생계를 책임질 차례다. 현대판 노예계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되돌릴 수도 없는 일. 자주 떠나는 훈련 탓에 부부라고 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우리. 우리의 진짜 결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MBC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