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영국 런던에서는 해리 왕손과 여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있었다. 영국에서 2,400만명 등 전 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이 이 결혼식을 지켜봤다고 한다. TV나 신문으로 당시 장면을 보면서 왕자나 공주라는 귀족제도가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이 문제라는 의문을 품은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부러워하는 사람들, 그냥 이벤트로 즐기는 사람들, 아니면 각 민족의 특수한 사정이니 따지지 말자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왕이나 공주·노예 등을 ‘사회적 특수계급’이라고 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특수계급을 경제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해 돈을 버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상징이기도 한 디즈니는 끊임없이 공주나 왕자를 만든다. 백설공주에서 시작해 최근 ‘겨울왕국’의 엘사까지 공주 마케팅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특수계급이 물리적으로 국민을 억압하곤 한다.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더 위험한 것은 자본의 힘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이러한 차별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특수계급의 이미지들이다. 영국의 이번 로열웨딩도 경제적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며 영국 왕정이 국가의 관광정책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본에는 덴노(天皇)가 있고 권력은 공주와 왕자의 행동에 대중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한국에도 공주와 왕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이들은 국가 경제에 이익은 주지 못하고 오히려 손실만 끼치고 있다. ‘공주’로 불렸던 전직 대통령은 흔하지 않은 경우다. 오히려 재벌에 공주나 황제 등이 더 많다. 꼭 재벌이 아니라도 마치 계급이 다른 것처럼 남을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의 행동이 이른바 ‘갑질’이라고 할 수 있다. 특수계급처럼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보다 아래 직급이나 서비스 종사자 등은 노예나 노비 등 자신을 위해 무조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이것도 디즈니류의 영화가 끼친 해독이 아닐까 한다. 공주님이나 황제 소리에 민감한 거부반응을 보일 때 사회가 보다 더 평등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우리 헌법 11조 2항이다. 이 조항은 지난 1948년 7월17일 공포된 제헌 헌법 때부터 있었고 70년간 그대로 유지돼왔다. 고대 조선에서 시작해 대한제국·일제강점기까지 끈질기게 남아 있던 왕족·귀족·양반·노비 등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특별히 우리 헌법에만 들어간 조항이다.
정말 아쉬운 점은 제도만 바뀌었을 뿐 지난 5,000년 동안 계속된 차별의식이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분야의 갑질 근절을 위해서는 우리 의식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차별에 대한 편견을 먼저 없앨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