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국제 외교가와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의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거래 자체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절묘한 타이밍에 회담 취소라는 ‘충격적 되치기’로 북한과의 비
핵화 협상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북미 회담 준비를 위한 사전접촉에 응하지 않은 북한의 진정성 확인과 중국의 견제 차단, 만만찮은 미국 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다목적 카드로 전격적인 결단을 내린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북미 정상회담을 단숨에 수용했지만 이후 준비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작업이 매우 복잡한 사안임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측이 약속한 ‘완전한 비핵화’가 미국이 목표로 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적잖은 간극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북측이 싱가포르 회담 재검토를 압박하며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에도 나오지 않자 이대로는 회담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회담 실패에 따라올 막대한 후폭풍을 예감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과 비핵화에 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극약 처방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대미 비난 담화를 시작으로 판 흔들기에 나선 북한에 맞서 협상 주도권을 잡는 한편 도를 넘은 북한의 미국 비난에 벌을 주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북측이 리비아식 핵 폐기에 강력 반발해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는 등 ‘회담 무산’을 위협하는 벼랑 끝 전술로 협상 주도권을 쥐었다는 관측이 나오자 평생을 거래로 살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몹시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앞세워 미국의 2인자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아둔한 얼뜨기’로 농락하자 결국 폭발한 트럼프 대통령이 아예 판을 깨버린 것이라고 백악관 관계자는 전했다. 유엔의 한 외교관은 “일개 차관급 인사가 도를 넘는 막말로 정상회담을 흔든 것은 북한의 명백한 실수”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충격적 되치기’로 회담 주도권을 찾아왔다고 평했다.
6·12회담 취소 배경에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는 중국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도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 태도가 변했다”고 지적하면서 북중 정상이 7~8일 극비리에 회동한 것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한반도 ‘역할론’을 앞세워 김 위원장의 뒷배로 나선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려다 북미 회담 무산의 책임론에 직면하게 생겼다. 진창이 옌볜대 교수는 “최근 북중관계가 좋아지면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끼어들려는 움직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회담 성패에 대한 의구심이 고조되는 마당에 트럼프 대통령이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한 것이 이날 회담 취소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북측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와중에 이뤄졌다. 북측이 사실상 비핵화의 첫걸음을 떼며 지렛대를 잃은 상태에서 북미 회담 취소로 이를 물리겠다고 하기는 어려워졌다는 점이 이 시점에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내 비판을 잠재우려는 노림수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는 “준비는 부실한데 노벨상 수상에만 연연한다”고 비판해온 야권과 언론에 비핵화 협상의 어려움과 백악관의 진지한 협상 태도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북미 회담의 필요성을 한층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은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회담 취소 후 극적으로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