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타고난 천재는 없다, 다만 길러질 뿐이다

■에릭 와이너 지음, 문학동네 펴냄

더러운 아테네·역병 돈 피렌체

이민자들 몰려든 빈 등 도시 7곳

적당한 마찰·긴장이 창조성 키워

천재 만드는 공간의 세가지 조건

'3D' 무질서·다양성·감식안 꼽아




‘천재는 한 시대에 무리 지어 등장한다’

1960년대 ‘천재학’이라는 신생 학문 연구에 뛰어든 딘 키스 사이먼턴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심리학 교수는 계량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해 재미있는 가설을 내놨다. 천재가 어쩌다 한 명씩 태어나는 게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 군집한다는 것.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수많은 철인이 활약하던 고대 아테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미켈란젤로·보티첼리 등이 함께한 16세기 피렌체가 그랬다. 저자는 이 같은 가설을 받아들여 천재들의 발자취를 좇는 순례를 시작한다.

그의 여정은 민주주의와 철학의 모태인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해 10~13세기 과학기술을 선도한 중국 송나라 수도 항저우,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 계몽주의 시대 근대학문의 기틀을 다진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를 거쳐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인도 콜카타, 고전음악과 정신분석학의 도시 빈, 그리고 ‘애플’이 탄생한 정보기술(IT) 혁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까지 7개 지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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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천재는 ‘아이큐 150’ 이상과 같은 지능지수만으로 측정된 것이 아닌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창조적 의미에서의 천재다. 저자는 특히 이 창조적 천재가 ‘왜’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서 풍성히 배출됐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천재를 만든 외부요인을 주목한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애덤 스미스, 모차르트ㆍ베토벤, 프로이트 등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창조적 천재들의 흔적을 만난 저자는 이들이 살던 시대는 결코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고 더럽고(아테네),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갔으며(피렌체), 이민자들이 몰려들어(빈) 대단히 살기 좋은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즉 어느 정도의 마찰과 긴장이 이어지는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창조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자는 천재들이 탄생한 도시의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지혜와 통찰을 나누는데, 선대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어 초라한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이 등장해 그의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저자가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유머도 읽는 맛을 더한다. ‘빌 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 드 보통의 통찰력이 만났다’는 평을 받는 저자의 지적인 유머코드가 그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더욱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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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도시를 답사한 그는 결국 천재에 대한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천재는 유전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독창성을 북돋우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 천재성은 사적 행위가 아니라 공적 참여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에 빗대 “한 아이를 길러내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 도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고 우리에게 걸맞은 천재를 갖게 된다’는 그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천재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에게 걸맞은 천재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가 이 거창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아홉살 짜리 딸을 위해서였던 것처럼 우리의 아들딸들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어떻게’ 천재가 탄생할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저자가 꼽은 ‘3D’에서 얻을 수 있다. 3D는 무질서(disorder), 다양성(diversity), 감식안(discernment)으로 저자가 찾은 천재들이 등장한 창조적 장소의 조건이다. 1만 8,500원

김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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