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반전의 북미정상회담] 金 "체제보장하라" 文 "일단 만나야" 트럼프 "경제도 지원"

■3인의 비핵화 포커게임

☞끝장보는 트럼프

"누구나 게임을 한다"…대화 재추진 승부수

☞초조한 김정은

美 경제·체제 보장 통해 선대와 차별화 시도

☞달래는 문재인

"이번 기회 놓치면 끝"…북미 불신 좁히기 적극




‘2018년 5월24일, 김정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국무위원장 각하 수신, 도널드 트럼프 미 합중국 대통령 발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편지 한 통이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상대방을 깍듯하게 예우한 편지였지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북미 핵 담판이 이대로 무산되나 했지만 김 위원장은 다음날 곧바로 재고를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긴급 SOS를 쳤다. 남북 정상은 지난 26일 극비리에 판문점에서 회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오후9시(현지시각)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남북미 정상의 명운을 건 게임에 격랑에 휩싸였던 60시간이었다.


◇충격요법으로 주도권 잡은 트럼프=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편지는 남북뿐 아니라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미국 내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으로부터 먼저 취소 통보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먼저 취소 카드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성공적인 비핵화 협상 결과를 도출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물러섰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충격요법이 통했다. 북한은 25일 오전 일찍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담화문을 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간절한 의지를 전하는 동시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에 반발하는 북한을 달래기 위해 제시했던 ‘트럼프 방식’에 대해 “은근히 기대했다”고 호소했다. 선언적이나마 비핵화 협상 일괄 타결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잡고 2020년 재선에 맞춰 비핵화 이행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트럼프의 협상계획 수용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누구나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회담을 취소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생산적 대화’를 이어가고 재추진도 거리낌 없이 공식화하는 등 냉·온탕을 수시로 오가는 발언을 이어갔지만 결국 ‘특유의 거래기술’로 북미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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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못한 일격에 초조해진 金=트럼프의 회담 취소 통보 편지에 북한이 내놓은 담화문은 김 제1부상 명의였다. 하지만 김 부상의 말이라고 여기는 이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 편지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직접 답신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미 김일성·김정일 선대와 차별화를 통한 장기 집권 청사진을 그리고 대내 공개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경제성장을 끌어내기 위해 거래용으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오직 ‘비핵화’ 하나. 제재 완화 등 경제지원을 받으면서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비핵화 이행을 최대한 오래 끄는 게 유효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빠른 이행이 유리한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과는 완전 배치됐다. 과거 북한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언급했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 안보보좌관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자 김 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을 앞세워 대미 적대 발언에 나섰다. 중국 베이징과 다롄을 잇따라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두 차례나 만난 점도 다시 비핵화 밀당에 나서는 뒷심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끝장 승부사로서의 기질은 김 위원장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등 뒤에 중국을 둔 것만으로는 미국과 힘겨루기에서 열세라는 판단하에 문 대통령에게 급히 만남을 요청했다. 그간 북미 간 메신저 역할을 해온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와 경제·체제 보장 ‘빅딜’을 정말 믿고 해도 되냐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북한 경제 발전과 직결되는 판문점 선언 이행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호 불신의 북미…달래기 나선 文=초조해진 김 위원장은 25일 오후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서훈 국가원장에게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외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가 살아는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명쾌하게 끝나지 않으면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상 역시 꼬이기 시작했다. 북미 간 다시 재개된 ‘말의 전쟁’과 한반도 명운이 걸린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와 번복 사태는 문 대통령의 북미 메신저 역할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왔듯이 기적처럼 찾아온 한반도 평화의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 역시 문 대통령이 이미 직접 언급했던 내용이었다. 양쪽이 서로 믿지 못하는 점이 현 게임의 최대 난제라는 게 문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을 만난 문 대통령은 “양측이 직접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고 달랬다. 또 충분한 사전 대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도 직접 전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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