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따른 유화 제스처로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그 뒤에 숨겨진 ‘디테일의 악마’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해도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북한과 미국이 공격적인 언사를 주고받은 핵심은 북미가 선호하는 비핵화 방식에 대한 의견 차였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 비핵화, 후 보상’으로 대표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고집하자 북한은 볼턴 보좌관을 향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다”며 맹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식 비핵화’를 할 것이라며 북한을 달랬지만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여전히 “한꺼번에 일괄타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 조치, 동시적 보상’ 방식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한 내막은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북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이는 현재 북미 갈등이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이에 대한 의견 접근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같은 상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위원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에는 비핵화 일괄합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과 단계적 합의에 대한 선호가 드러난다”며 “이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생각하지 않는 비핵화 해법이라 이러한 견해차가 얼마나 빠르게 조정되느냐에 따라 북미회담 개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핵화 이후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을 어떻게 하느냐도 문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비핵화를 할 수 있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원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 평화협정 체결 등이 체제 보장 방안으로 거론되지만 북한이 이에 만족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비핵화 이후 북한의 번영’에도 디테일의 악마가 숨어 있다. 볼턴 보좌관은 대북 경제지원과 관련해 “북한이 한국처럼 ‘정상국가’가 되면 세계 각국과 예의 있는 행실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 경제원조(economic aid) 없이 민간기업의 투자만 이뤄질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일본과 다 대화를 했는데 3국 모두 북한을 돕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대북 경제지원을 상당 부분 떠맡을 경우 재원조달을 위해 증세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주한미군과 한반도에 배치된 미국 전략자산이 축소될지도 관심이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30일 기고문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되지는 않더라도 종전선언이 이뤄지고 평화협정이 체결될 경우 그 성격이 변화될 가능성 또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