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경제팀이 소득주도 성장을 두고 강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청와대와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의 영향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더니 이번에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경제부총리는 신의 영역에 있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최저임금 영향을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지적을 받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입장에서는 사면초가다. 더욱이 청와대는 장 실장 주도로 경제 전반을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내용을 공지해 불필요한 논란을 초래한 상황이다.
이 부위원장은 30일 서울 통의동에서 열린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고용지표가 나쁜 문제가 최저임금으로 인해 생긴 것인지 정확히 실증과 분석을 해봐야 한다”며 “정확한 자료로 판단되면 그때 가서 말을 해야지 김동연 부총리의 최근 속도조절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정부 여당에서 제기하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정면 비판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 부위원장은 부처 간에 다른 목소리가 나는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각 부처의 입장이 항상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정책에 혼선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 4월에도 기재부 중심의 일자리 정책이 잘못됐다며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이번에 또다시 작심하고 부총리를 비판하면서 문재인 정부 내 최저임금과 일자리 정책의 일대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이 부위원장은 기재부의 혁신성장보고대회 자료를 두고서도 “사람혁신 부문은 ‘대학 시스템을 고친다’고 딱 한 줄 있다”며 “연구와 고민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리더십에 다시 한번 흠집을 낸 셈이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최근 경기진단을 두고 부총리와 설전을 벌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관료 출신인 부총리와 외부에서 들어온 이들의 파워게임이 본격화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부총리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간부회의에서 “소득 1분위(하위 20%)를 포함한 저소득층의 소득 향상과 분배 개선을 위해서는 소득이전지출 등 대책들도 중요하지만 경제 전반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는 혁신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인 출신, 관료들에 불만 가득…최저임금 놓고 갈등 폭발
현실론 얘기한 부총리 코너에
경제정책 ‘이념론’ 쏠림 우려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가 끝난 뒤 청와대 대변인이 낸 서면 브리핑은 최근 김동연 부총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수정을 했지만 최초 자료에는 장하성 실장 주도로 관련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도 정례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가 정권 초부터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김동연 부총리”라고 밝혀왔지만 근래 들어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당시 토론회에서도 최저임금과 실업률 등을 두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저임금이 고용·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재부는 내부적으로 소득주도 성장도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장 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들은 현 상황이 ‘J커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새 정책이 자리를 잡으면서 단기적으로 지표가 하락하는 상태지만 시간이 흐른 뒤 상승 반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최저임금과 실업률, 산업동향 지표 등 안건마다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장 실장과 김 부총리는 이번 회의 전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두고 다소 엇갈리는 분석을 내놓았다.
관가에서는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의 발언은 정치인과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의 관료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위원장이 이날 “기재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들도, 정부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개선돼가고 있고 좋아지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외부출신 인사들과 관료들인 ‘늘공(늘 공무원)’과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장 실장이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는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다음날인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나온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루 만에 정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평소 김 부총리의 스타일을 볼 때 이를 작심발언으로 받아들였다. 김 부총리가 최저임금 같은 이슈에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 같은 추정의 배경은 장 실장과 부총리와의 관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그립(grip)감이 센 부총리와 정책실장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최근 들어 청와대의 소득주도 성장에 반기를 드는 듯한 발언도 이어왔다. 지난 2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시장과 사업주의 어려움과 수용성을 충분히 분석해서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24일에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동 수요(고용)가 바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시차가 있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당장 문제가 없더라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는 부작용이 따른다는 뜻이다. 정치인 출신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는 대목이다. /세종=김영필기자 송종호기자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