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입지보다 '탄광속 카나리아' 선택...악화되는 경제지표에 확신 선듯




문재인 대통령은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출범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은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혁신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혁신성장은) 우리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규제혁파에도 속도를 내달라”고 강조했다. 적어도 혁신성장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뉘앙스지만 한편으로는 ‘질책’으로 들릴 만한 말로도 풀이된다. 관료 사회에서는 “김 부총리가 연이어 경제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에 깊은 내상을 입은 셈”이라고 해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일자리와 복지를 위한 재정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부작용에 대한 비판에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각에 대한 질책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보완책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중심으로 꾸려지게 되면서 소득주도 성장은 장하성, 혁신성장은 김동연으로 역할이 나눠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부총리의 입지가 점차 줄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김 부총리는 최근 최저임금 등에 대한 소신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마치 지난 2004년 7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386세대가 경제를 몰라서 한계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과 비슷하다. 당시 이 부총리는 아파트 원가공개와 공직자 주식백지신탁 제도 등을 두고 청와대 386과 마찰을 빚었다.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놓고서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과 맞붙기도 했다. ‘시장’과 ‘성장’을 중요시했던 이 전 부총리의 생각은 옳았지만 정권에 지분이 없는 경제관료의 한계는 뚜렷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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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또 연출되고 있다. 김 부총리의 직언도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게 관료들의 설명이다. 김 부총리는 16일 “최저임금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최저임금의 영향이 큰 숙박·음식점업의 4월 생산은 전월 대비 -0.8%, 전년 동기와 비교해 -1.8% 역성장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그치고 있고 1·4분기 하위 20% 가구의 소득은 되레 8%나 줄었다. 이런 탓에 김 부총리는 공식 발언과 달리 사석에서는 “최저임금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해왔다. 임금 근로자의 고용과 근로시간 감소 같은 데이터는 김 부총리의 생각을 더 단단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29일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에서도 최저임금의 부작용에 대해 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김 부총리는 정권에 지분이 없는 경제관료인데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위기를 알려주는 ‘탄광 속 카나리아’가 되는 게 소임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부총리는 청와대 386 인사들과 갈등을 빚다 13개월 만에 물러난 바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부총리 입장에서는 이 정도 얘기도 못하면 경제팀을 총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최근 경제지표들을 보고 평소 소신에 확신이 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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