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토요워치] 디지털 글쓰기 품은 종이책 '유쾌한 반란'

'책 종말' 전망 뒤엎고 출판대중화 견인

SNS팔로어 10만명 넘는 인플루언서

책 냈다하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대형출판사도 인터넷작가 모시기 경쟁




디지털 글쓰기가 일상화하면서 ‘곧 종이 책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얘기가 한동안 파다했다. 실제로 책 판매 부수가 크게 줄었고 독서율마저 하락해 종이 책은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다 결국 전자책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올디스트 미디어’로 취급받던 종이 책에 요즘 유쾌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뉴미디어의 탄생이 새로운 책과 저자를 탄생하게 하는 ‘산파’이자 플랫폼이 돼 ‘출판의 대중화’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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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이제는 디지털 글쓰기 플랫폼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만 얻으면 굳이 등단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지 않고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면서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런 작품들은 어느 정도 대중성이 검증됐기 때문에 출판 이후 독자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 포인트”라고 말했다.

디지털 글쓰기가 성공적인 출판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최근 부쩍 늘었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하태완)’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조유미)’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김재식)’ ‘참 소중한 너라서(김지훈)’ ‘당신의 마음을 안아줄게요(김지훈)’ 등은 모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가 10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influencer)이자 북스타그래머(책사진을 SNS에 올리고 ‘북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다는 이용자)로 이들의 책은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퍼블리·브런치 등 ‘글쓰기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해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쓴 글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면서 과거에는 블로거 정도로 취급됐던 인터넷 저자들이 책을 출간하며 당당하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현상이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인문학을 비롯해 문학까지도 텔레비전 등을 보고 인터넷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 독자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며 “독자와 눈높이가 비슷한 저자들의 글은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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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등단 작가는 출판 대중화 시대를 이끌면서 하나의 출판 트렌드로 자리 잡아 나가고 있다. 성수동 공장 노동자 출신 김동식 씨의 경우는 ‘오늘의 유머’에 올린 글들이 눈에 띄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웹소설 ‘김 비서가 왜 그럴까(정경윤)’는 웹툰으로도 제작됐으며 두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돼 오는 6일 tvN을 통해 방송되는 등 원소스멀티유즈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기도 한다. 김도훈 예스24 문학 MD는 “SNS를 통해 잠재적 독자들과 공유하던 콘텐츠를 엮어낸 에세이는 이미 많이 출간됐고 브런치북, 네이버 포트폴리오 등 새로운 콘텐츠 공간에서 연재한 내용으로 책을 내거나 김동식 작가와 같이 특정 사이트에서 개별적으로 연재한 소설을 모아 소설집을 내는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며 “꼭 등단의 방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환경에 따라 책을 내는 작가군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판사들은 유명 인터넷 작가 선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특히 소형 출판사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성이 검증된 글을 책으로 펴냄으로써 최소한의 독자를 확보하려는 일종의 ‘리스크 회피’ 전략으로 이용하는 등 최근의 디지털 글쓰기 열풍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정경윤 작가./송은석기자‘김비서가 왜 그럴까’ 정경윤 작가./송은석기자


소설가 김동식 ./송은석기자소설가 김동식 ./송은석기자


더 나아가 디지털 글쓰기와의 융합은 종이 책 출판 외연을 크게 확장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주일우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 겸 출판사 이음 대표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이나 이야기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는 늘 있었지만 그것들을 담을 수 있는 틀은 그동안 많지 않았고, 그 틀은 책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책뿐만 아니라 블로그·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을 비롯해 퍼블리·브런치 등 글쓰기 플랫폼이 많아져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소통하는 창구가 많아진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자신을 표현하고 표출할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나는 것은 콘텐츠 내용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다”며 “정통 출판 과정을 거친 작품과 새로운 과정을 거쳐 나온 책들 간의 갈등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대형 출판사까지 인터넷 작가 잡기 경쟁에 가세했다. 하태완(모든 순간이 너였다)과 김재식(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 등이 위즈덤하우스와 쌤앤파커스에서 책을 출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털 글쓰기와 종이 책의 융합이 가속화하면서 출판사들 사이에서는 인플루언서 저자와 인기 북스타그래머들은 ‘귀하신 몸’이 됐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가 ‘그놈은 멋있었다’를 출간할 때만 해도 이렇다저렇다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이상 2쇄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인터넷을 통해 이미 검증이 된 저자들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트렌드의 반영이기도 하고 비즈니스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기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통 출판과 디지털 글쓰기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는 지적도 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브런치 등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작가가 되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다”며 “기존에 등단한 작가의 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학상 작품 심사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한계가 존재할 것으로 본다”며 “제도권 외의 작가가 기존 작가세력을 누를 만큼 힘이 커지게 된다면 긴장이 생기고 서로 견제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까지 커지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주일우 대표는 “인터넷 스타들이 여러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책에 한정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그게 잘 만들어진 책과는 차이점이 있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더해져 더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되고 정제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출판 영역의 기능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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