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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하트시그널 시즌2 '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서울 강남의 러시아워를 피해 이른 새벽 닭장같은 광역버스에 올라타면 오늘 하루가 온전히 갇혀버린 느낌이다. 자고 일어나면 버스가 강남역과 사당역이 아니라 제주의 함덕 해변가 앞에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쳇바퀴처럼 돌고 돌아도 제자리인 일상,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채울 자리가 없다.

하트와 시그널, 심장과 신호. 참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2’는 판타지다. 그것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잘생기고 예쁜, 직업도 좋고 재력도 있어 보이는, 게다가 데이트할 시간마저 있는. 그들의 썸과 밀당 이야기를 보다보면 멍 해지고는 한다.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이들의 사랑찾기는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 괴리감이 있다.


그럼에도 보고 또 보게 된다. 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들은 ‘하트시그널 시즌2’를 두고 ‘짝’과 비교하곤 한다. 콘셉트는 비슷하지만 목표부터가 다르다. ‘짝’이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실험적으로 다뤘다면 ‘하트시그널2’는 오로지 연애상대를 찾기 위한 선택에 치중했다. ‘짝’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직업이었다면 ‘하트시그널2’에서는 표현인 것처럼.

누가 얼마나 확신을 줄 수 있는가에 따라 매주 선택이 엇갈린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에피소드는 온전히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향한 미묘한 줄다리기가 여느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주인공끼리 맺어질게 뻔한 로맨스 드라마보다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의 선택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김현우와 오영주, 임현주를 중심으로 모든 출연자들이 삼각관계 안에서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

이들의 엇갈린 ‘사랑의 짝대기’를 보며 패널은 시청자들과 함께 감탄하고, 긴장하며, 환호하다, 털썩 주저앉는다.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에 따른 패널의 해석은 10여년 전 유행했던 연애지침서를 눈 앞에서 보는 듯 하다.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친구와 연애상담 하는 기분이랄까.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여자는 그래, 남자는 그래’ 하다보면 한시간이 후딱 지나고 혼자만의 시간이 남는다. 깜깜하기만 한.



‘하트시그널2’는 연애와 그 이후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썸 하나로만 12주 방송분량을 채운다. 열혈 시청자들은 편집과정에서 시간대가 바뀌었다며 항의하기도 하지만, 이런 편집의 묘미도 있어야 손에 땀 좀 차는 것 아니겠나 싶다. 아침에 회사갔다 돌아와 밥먹고 TV보다 잠드는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출연자들의 모습은 꿈과 환상 그 자체다.


출연자들은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 촬영 후 일상으로 돌아간지 한참 된 그들은 방송 이후 SNS에 올린 사진과 글이 연예부 기자들의 표적이 되는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 직면했다. 그만큼 매주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전은 이들의 이야기로 인터넷이 뜨겁다. 응원과 조언, 비판이 공존하는 인터넷 기사 댓글창은 또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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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판타지가 우리 일상이 될 수 없다는건 누구나 잘 안다. 출연자들의 공동생활도 잠시뿐, 맺어진 커플이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가고 있을지도 미지수다. 시즌1의 경우처럼 ‘서로 응원한다’는 말만 남긴 채 뿔뿔이 흩어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싸우고 헤어지고 울고불고하다 다시 만나는 보통의 연애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의 환상은 오랫동안 유지될 테니까.

‘연애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시즌이다. 그동안 방송된 맞선 프로그램의 장점들만 쏙쏙 뽑아놓은 듯한 아우라가 형광등 100개는 켜놓은 것 같다. 잠자던 연애세포의 뉴런 하나하나씩 뽑아 일으켜 세우는 듯 하다. 출연자들의 썸은 오직 ‘사람을 좋아하기까지의 심리변화’ 그 하나만을 보여주기 위해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사랑을 논했다.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불리는 노희경은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책을 썼다. 텅 빈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다 광고로 넘어가는 순간순간의 감정이 꼭 이 책 제목과 같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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