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현충일 斷想

김영문 관세청장

김영문 관세청장./이호재기자.



지난주 현충일,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조국의 독립과 한국전쟁, 남북 분단을 거치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국민들의 희생을 다시금 생각해봤다.

1878년 출발한 세관의 역사에도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헌신한 많은 분이 있다. 구한말 세관원으로 근무하다 민족혼을 일깨우려 한 한서 남궁억 선생과 1900년 인천해관에 근무하면서 평남 진남포 지역에서 조선 청년들을 계몽하다 일제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정대호 선생이 있다.

한국전쟁의 상흔은 피해갈 수 없게 남아 있다. 1911년 건립된 인천세관 건물은 폭격으로 무너졌고 많은 이들이 세관원이라는 이유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한국전쟁으로 서울과 인천·군산 등 전국의 세관은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최근 군산세관에서 근무하다 전쟁 중 희생된 아버지의 유산을 찾아다닌 70대 전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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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할아버지는 올 들어 군산세관에서 근무했던 아버지의 행적을 찾기 위해 애를 써왔다. 새 정부 출범 후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억울함 없게 명예와 가치를 회복시켜준다는 약속이 큰 힘이 됐다. 전 할아버지가 두 살 때 그의 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세관원이라는 이유로 인민군에 끌려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군산항을 드나드는 모든 물품을 관리하는 군산세관 보세창고 관리인이라는 게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전 할아버지는 추측한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먹고살기 바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살았던 전 할아버지는 최근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군산세관을 찾았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 군산세관이 부산세관으로 피난을 가는 바람에 군산에는 마땅한 자료가 없었던 것이다.

전 할아버지는 다시 아버지를 찾아 부산세관을 방문해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부산세관은 박물관에 보관된 과거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국전쟁 전후로 예상되는 군산세관 직원들이 함께 찍은 사진 3장을 찾아 전 할아버지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전달받은 사진을 들고 일가친척을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존재를 찾던 전 할아버지는 친척의 말 한마디에 오열했다. “네 아버지 여기 있다.” 칠순이 돼서야 찾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군산세관은 전 할아버지의 부친이 세관에서 근무했던 세관원이었음을 확인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관우(關友)가족이 됐음을 알렸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수많은 무명의 애국자들의 헌신과 피땀으로 만들어졌다.

세관을 지켜간 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관세행정이 존재한다. 세관을 지키기 위해 많은 희생도 뒤따랐다. 세관의 일선에서 먼저 가신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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