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방문을 위해 중국 고위급의 전용기를 이용한 사실을 11일 공개했다. 자력갱생을 외쳐온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타국 항공기를 이용해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떠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 등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조미(북미)수뇌상봉과 회담이 개최되는 싱가포르를 방문하시기 위해 10일 오전 중국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하시었다”면서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환송 나온 당 및 정부 지도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중국 전용기에 오르시였다”고 전했다.
이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2면에 걸쳐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출발과 싱가포르 도착 직후 리센룽 총리의 영접을 받는 등의 장면을 담은 컬러사진 16장을 게재했다. 이 사진에는 김정은 위원장 뒤로 중국 국적기임을 뜻하는 ‘에어 차이나(AIR CHINA)’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진 전용기가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이 전용기 트랙 위에서 배웅 나온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 옆으로 기체 동체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북한 당국이 중국 전용기를 이용한 사실을 알린 것은 파격적이다. 우선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강국’, ‘강성대국’, ‘자력갱생’ 등을 외쳐온 북한 정부 입장에서 타국 국적기를 이용한 것은 주민들에게 체면이 안 서는 행위다. 그러나 체면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의견이다. 북·중의 친밀함을 보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견뎌내는 데 중국이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도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합리적인 리더 스타일로 (비행기 이용에 따른)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조언을 들은 것”라며 회담을 앞두고 우방인 중국의 적극적 지지와 협력을 주민들에게 보여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매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 사실을 하루 늦게 보도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은 최근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모두 평양으로 귀환한 이후 방중 사실을 보도했다. 두 사례와 비교하면 이번 보도 시점은 상당히 빠르다. 집권 이후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최고지도자의 ‘광폭 행보’를 적극적으로 선전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권혁준인턴기자 hj779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