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김정은식 개혁하려면 국가통계 개방해야

민병권 정치부 차장

민병권 차장민병권 차장



‘4·27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12 북미 정상회담’이 실현되면서 한반도에는 모처럼 해빙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이행 수준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경제협력이 한미와 국제사회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비핵화를 대가로 경제적 번영과 체제 안정을 약속받으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개혁개방 노선이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재원 조달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교류협력기금 등으로 대북 지원을 준비하고 있지만 1조원대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에도 북한 비핵화시 대북 투자 및 지원을 독려하려는 듯한 뉘앙스의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과도한 중국의 대북 지원은 가뜩이나 심한 북한의 대중의존도를 키울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경제 지원을 빌미로 북한에 과거사 갈등 종결을 종용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대안으로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기구 중에서도 특히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세계은행(WB)을 경제개혁개방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2018년도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WB는 지난 2016년 한 해에만 해도 300억달러(약 32조원)의 재원을 조달했다. 이 같은 종잣돈을 바탕으로 WB는 보통 30년 만기의 초장기 초저리 대출인 ‘양허성차관’을 운용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수십 년간 상환 부담을 최소화하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서 지원받도록 돕자고 하지만 AIIB에는 초저리의 양허성차관이 없어 WB의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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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차관을 쓴다고 북한의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중진국 상위권 반열에 올랐던 1990년대 초반까지 WB 차관을 사용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까지도 WB에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다 써 미국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을 정도라고 한다.

북한이 WB의 자금을 지원받으려면 먼저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WB 회원국의 최우선 조건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하는 것이다. IMF에 가입하려면 국가 재정 현황을 조사받고 주요 국가통계를 공개해야 하는데 폐쇄적인 체제 특성상 북한은 여태껏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IMF의 조사를 받고 자국의 빈곤한 상황이 공공연히 통계화돼 발표되는 것이 역대 북한 최고통치자로서는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리주의를 택한 김 위원장이라면 선대 통치자들과는 다르게 과감해야 한다. 앞서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열악한 도로 형편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김 위원장이었다. 그 같은 각오라면 잠시의 체면을 잊고 IMF에도 경제조사를 수용하는 용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위해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덩샤오핑 모델’, 베트남의 ‘도이머이 모델’,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 모델’ 모두 IMF와 WB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마침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한국인인 이창용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맡고 있어 북한으로서는 IMF 가입에 다시 없는 적기일 것이다.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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