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는 잔액이 줄어듭니다
마루를 빠져나가기 전에 한 조각 물어다가
둥지에 담아두라고 눈짓해도 뻐꾸기는
제 몫만 다하느라 목청을 돋웁니다
지루하고 남아도는 저것들
이자는 없더라도 챙겨놨다가
다급해 미간에 불이 붙을 때 한 조각
미련이 등을 때리거든 한 조각
환급해주면 좋으련만
뻐꾸기는 탁란의 습성을 고집하는지
미루기만 합니다
정각마다 둥지를 나와 정확한 개수를 던져주고는
부화시키라고 합니다 유정란이니
새가 되지 못하면 네 책임이라고
뻐꾹, 뻐꾹, 사방에 소문내고 들어갑니다
‘어, 절, 씨, 고~’ 탁란을 마친 검은등뻐꾸기가 한가롭게 울 때, 어느 시골에서는 마당을 지나가는 처마 그림자를 눈으로 재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도시에서는 뻐꾸기 대신 뻐꾸기시계가 일 재촉하는 마름이다. 누구에게나 스물네 개 알을 내어주고 부화시키라 닦달한다. 저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가슴 털을 뽑으며 포란하다 잠이 든다. 미처 부화하지 못한 알들이 굴러 떨어지면 꿈도 함께 부서진다. 댐을 무너트려 자연하천을 만들 듯, 뻐꾸기 금고를 부수어 다시 시간의 강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풀밭에 누워 구름을 보며 태초의 시간을 하염없이 상상할 수는 없을까?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