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담판’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정상회담은 경직된 분위기 속에 치열한 신경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1분이면 북한의 진정성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시간이 넘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는 회담 직전까지 이뤄진 실무협상에서도 좁혀지지 않은 이견은 접어두고 일단 ‘큰 틀’의 기본적 합의에 만족하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두 정상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몇 시간 전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진짜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곧 알게 될 것”이라며 양측의 의견 조율이 상당 부분 이뤄진 것을 암시했으며 회담 내내 수시로 “오늘 회담은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거나 “기분이 좋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김 위원장도 초반 긴장했던 모습을 지워내고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왔다.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화답했다. 그는 또 단독정상회담을 마친 뒤 2층 발코니를 따라 확대정상회담장을 향해 걸어가던 중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미소 짓게 만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정상회담을 마치고 업무 오찬을 시작하기 전에 취재진에게 “멋지고, 잘생기고, 날씬하고 완벽하게 찍어달라”고 당부해 주위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공동 합의문에 서명하기 전 이뤄진 짧은 산책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산책을 하던 중 김 위원장에게 이른바 ‘비스트(야수)’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캐딜락 원’의 내부를 보여줬다. 이를 본 전문가들은 경호의 핵심인 캐딜락 원의 속살을 보여준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대단한 호의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본 김 위원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단하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책을 마치고 이뤄진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서명식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 치켜세우기는 이어졌다. 그는 김 위원장을 보고 가장 놀란 게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위원장은 위대한 인격에 매우 똑똑하고 자기 나라를 매우 사랑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매우 특별한 유대 관계를 갖게 됐다”며 “그를 백악관에 초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 ‘꼬마 로켓맨’으로 부르며 적대시했던 분위기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리비아식 비핵화’ 등의 발언으로 북한을 분노케 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취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당초 북한의 반발로 정상회담장에 배석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던 볼턴과도 김 위원장이 커다란 거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이번 회담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모습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특별취재단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