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이현령비현령’ 통계(2)

개인 근로소득 증가 가공 논란에

사립교원 뺀 공공일자리 통계 등

왜곡된 정책으로 국민에 피해만

정부 자의적 해석 유혹 벗어나야




# 열흘 전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 90%” 발언에 대해 진화에 나섰다. “통계 원자료를 다시 분석해 보니 개인 근로소득이 하위 10%만 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 1.8%포인트 하락했고 나머지 90%는 지난해 대비 2.9%포인트에서 8.3%포인트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곧바로 많은 반박들이 쏟아졌다. 홍 수석이 근거로 내놓은 통계에는 근로소득이 없는 실직자나 구직 실패자, 취업준비생 등이 모두 빠져 있다는 게 요지였다.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빼고 현재 임금을 받는 사람들만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측정해서는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애초 근로자만 대상으로 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타당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만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이 같은 통계 논란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통계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내외 통계를 모두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 경우다.

# 딱 1년 전인 지난해 6월13일 통계청이 사상 처음으로 공공 부문의 일자리 통계를 공개했다. 2015년 기준 국내 일자리에서 공공 부문 비율이 8.9%(233만6,000개)에 불과하다는 자료다. 중앙·지방정부 일자리는 199만개, 공기업은 34만6,000개다. 이는 OECD 평균인 21.3%의 절반도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이를 바탕으로 “공공일자리 81만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통계청은 사립학교 교직원 수를 공공일자리에 넣지 않았다. 인건비가 100% 예산으로 지원되지만 학교 운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영국·프랑스 등 대다수의 OECD 회원국은 정부에서 인건비를 지급하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사립학교 교원, 비영리 공공단체 직원도 공공일자리에 포함한다. 통계청 수치를 두고 이곳저곳에서 “공공일자리 통계 기준이 나라별로 심각한 편차를 보이는데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비교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책 근거를 대려고 공공일자리 수를 의도적으로 줄인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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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석 달 뒤인 9월12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교사 정원 확대가 포함된 ‘교원 수급정책 개선방향’을 발표했다. 교원 증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라는 통계 자료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16.8명, 중학교 15.7명, 고등학교 14.1명이다. OECD 평균보다 1~2명 더 적다.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 23.4명, 중등 30명으로 OECD 평균에 비해 최대 7명 가까이 많다.

교육부는 이를 근거로 “OECD 수준에 맞추려면 교사 정원을 현재보다 1만5,000~ 2만명은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바로 다음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내년도 공립초등학교 교사 선발 예정인원을 공개했다. 사전 예고한 105명에서 280명 증원한 385명을 뽑는다는 것이다. 조 교육감은 전날 교육부가 낸 OECD 자료를 언급하면서 증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두 기관 다 중요한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오는 2025년께는 교사 정원 확충 없이도 교사 1인당 학생 수 등이 OECD 평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의 특성상 정년까지 30년 이상 고용을 보장하려면 수십조원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언급도 물론 없었다.

새 정부 집권 후 지난 1년여간 유사한 통계 논란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기자가 지난해 9월 칼럼을 통해 정부 통계 왜곡의 부작용을 지적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국가기관이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렇다. 정부 입맛대로 가공된 통계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왜곡된 정책이 양산되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무엇보다 현 정부는 이전 정권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강조하고 도덕성을 앞세우지 않는가. 통계 마사지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해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shim@sedaily.com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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