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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칼럼] 출연자 논란에도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는 이유

사진=SBS사진=SBS



가끔 유명하다는 자기계발서를 얻어서 읽다보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자기자랑처럼 느껴지곤 한다. 몇 장 읽다가 라면 받침으로 쓰고, 분리수거 하는 날에 버린다. 중고서점에 내다 팔려고 해도 차비가 더 많이 들어 그냥 버린다.

잘 알지 못하는 이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도 알 만큼 안다고 자신하는 분야에서의 조언은 더 그렇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우선 간을 보고, 자기와 비교한다. 상대가 월등하다고 인정한 다음에서야 마지못해 움직인다. 그것도 미적미적.


백종원이 처음 TV에 등장했을 때의 반응이 꼭 그랬다. 셰프가 아닌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로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한 그는 첫 녹화부터 심상치 않았다. 번쩍거리는 레스토랑 주방도, 듣도 보도 못한 요리기구와 재료들도, 한눈에도 판매용으로 보이는 결과물도 없었다.

웬 푸근한 충청도 아저씨가 등장해 그랬슈 저랬슈를 연발하며 집에서도 해먹는 밥을 요리라며 선보였다. 처음엔 그랬다. 각종 양념을 작은스푼, 큰스푼, 국자, 종이컵으로 개량하는 희한한 계량법에 한번 놀라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설탕의 양에 두 번 놀랐다.

대다수가 백종원의 그런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일부는 그를 향해 ‘브랜드 홍보를 위해 TV에 나온 장사꾼’이라고 말했지만, 그들도 백종원레시피를 따라 한번쯤은 음식을 만들어 봤으리라 싶다. 그의 요리는 따라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전문성도 증명했다. ‘한식대첩’ 시리즈의 심사위원으로 나서 식재료의 특성과 참가자들이 만드는 요리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치 옆에서 함께 먹으며 설명해주는 것처럼 푸근한 그의 말투에 프로그램 마니아도 생겼다. 그는 그렇게 주부들의 아이돌이 됐다.



백종원의 진가는 ‘푸드트럭’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장사 초보인 참가자들에게 기초부터 심화까지 조언하고 가르치는 모습은 왜 그가 수십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성공했는지 톡톡히 보여줬다. 출연자들을 보는 내내 그의 눈은 여느 프로그램과 달리 매섭고 날카로웠다. “장사는 장난이 아니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다.

매서운 시선은 ‘골목식당’으로 이어졌다. 그는 신선한 재료, 음식의 맛, 위생상태부터 철저하게 점검했다. 많은 출연자들의 표정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자신이 그동안 해온 노력이 통째로 배신당하는 느낌이었을까. 이대에서도, 필동에서도, 공덕동에서도 굳은 표정의 출연자들이 나왔다.


그는 이들을 향해 윽박지르지 않았다. “잘못하고 있다”는 말 대신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쉽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면 요리대결까지 벌여 출연자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백종원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기 시작한 이들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 남았다. 선택은 본인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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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틀이 갖춰지면 심화과정에 돌입했다. 메뉴의 단순화, 속도 향상, 서비스 마인드, 인테리어까지 순차적으로 개선해나갔다. 수학공식을 외우고, 기본문제를 풀면 응용문제가 나오듯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본인의 노력과 역량이 성공여부를 좌우한다. 사람들은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푸드트럭’의 핫도그 아저씨, ‘골목식당’의 생태찌개집과 주꾸미집, 신흥시장 횟집을 손꼽았다.

방송 초기 콘셉트가 유사하다고 비교됐던 고든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와는 분명 다른 구조다. 백종원의 시스템은 냉정한 독설 대신 정확한 진단, 보완해야 할 부분에 집중한다. 맛도 좋고 멋도 좋지만 식당의 위치, 손님들의 성향에 따른 맞춤 조언이 절대적이다. 조언하되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받아들이면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 식당에는 푸근한 진심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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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컨설턴트가, 또는 자기계발서가 이렇듯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변화에 냉랭했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만의 힘이다. 이 힘은 상대에 대한 인정과 믿음, 배려에서부터 나왔다.

‘공부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배운 이들이 막상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의 혼란, 사업이 위기에 처했지만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들은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보고, 컨설턴트를 고용했으나 별반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애를 교과서로 배운 것처럼 실전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고 머리를 부여잡거나 술을 마셨다.

백종원은 출연자를 넘어 TV 앞에 선 시청자들을 향해 ‘기본부터 다잡으라’고 조언한다. 땅을 평평하게 다진 뒤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린 뒤,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리라고 말한다. 단 천천히, 과도하지 않게, 조금씩 나에게 또 환경에 맞춰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라 조언한다. 식당 이야기를 하지만 결코 식당 이야기만은 아니다.

늦은 밤 퇴근길에 강남역을 지나칠 때마다 핫도그 푸드트럭 앞에서 주인아저씨를 우두커니 지켜보곤 한다. 긴 줄이 늘어선 트럭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여전히 말을 걸어주고 웃어주는 그의 모습이 지친 하루를 다독이는 듯 하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분노 유발 프로가 아니라 사람을 밝아지게 만드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과 같다. 시리즈 마지막회에서 이를 실감할 때마다 가벼운 흥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곤 한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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