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가는 기존의 시스템을 굳이 블록체인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병역 인적 관리나 공무원 채용 같은 공공 분야 등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분산 공유해야 하는 시스템에는 블록체인이 꼭 적용돼야 합니다.”
국내 블록체인 개발 1세대인 김태원(사진) 글로스퍼 대표는 블록체인 도입 분야를 선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서울 한양종합기술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블록체인이 만드는 기회’ 세미나에서 강연을 마친 후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 대표는 “사병들의 안전한 군 복무를 돕거나 공무원 인재 선발과 관련한 정보 분산 관리에는 블록체인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병영 내 인권침해 가해자나 관심사병의 인적 정보를 분산원장 기술로 군에서 관리하면 매년 반복되는 병영 내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군에도 블록체인을 제안했지만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줄 수 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며 “사회 시스템의 기초적인 분야부터 블록체인을 도입해야 하지만 아직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정보(현 나이스신용평가)에서 근무한 김 대표는 지난 2014년 블록체인 기업 ‘LC컴퍼니’를 세웠고 블록체인 기반의 국제송금 서비스 ‘비트히어’도 개발했다.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준비위원장을 거쳐 현재 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 도산대로 인근에 본사를 둔 글로스퍼는 전 세계 12개 국적의 개발자들을 포함한 맨파워를 자랑한다.
그는 강연에서 “유럽 등 블록체인 전문가들은 과거 인터넷 강국이었던 한국이 블록체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폭발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 암호화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블록체인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테스트베드가 되는 데 저항감이 크지 않고 1990년대 인터넷 육성정책으로 관련 산업을 견인해봤던 경험이 블록체인 발전에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글로스퍼는 코어 기술과 함께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용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 결실로 나온 것이 세계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에 공급된 암호화폐 ‘노원(NW)’ 화폐다. 서울 노원구에서 봉사활동을 한 자원봉사자는 ‘노원’을 지급받아 구내 총 200여곳의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생소한 지역화폐 발행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글로스퍼가 지역화폐를 개발하는 데 2개월이 걸렸지만 지자체 조례 개정에는 6개월이 소요됐다. 올 초 화폐 발행 후 봉사활동이 급증하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김 대표는 “법 제도는 기술 발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다”며 “노원 화폐는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기술로 블록체인의 높은 활용도가 입증된 사례”라고 말했다.
소방관·경찰 등이 공무 수행 중 다쳤을 때 비대면·원격 치료나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데 필요한 저작권 데이터 관리 등에 블록체인이 사용되면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그는 “급성장한 인터넷 산업의 핵심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망·시스템 사업자가 아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킬러콘텐츠”라며 “블록체인도 기반기술만이 아닌 어떤 킬러콘텐츠를 누가 먼저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오스트리아는 근대에 개방적인 음악 인재 영입 정책으로 음악강국이 됐다”며 “블록체인이 사람이 종속되지 않는 기술, 따뜻한 기술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