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인 보호무역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미국·중국·유럽연합(EU) 등 세계 3대 경제권을 휩쓸 글로벌 무역전쟁 2라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예고한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승인하며 중국과의 일전을 예고한 가운데 EU는 지난달 트럼프 정부가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대응으로 미국산 청바지와 위스키 등에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최종 결정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승인했다며 이를 적용할 품목 1,102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관세는 두 차례로 나뉘어 차례로 부과된다. 1차적으로 관세를 적용하는 품목은 818개(340억달러)로 다음달 6일부터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2차 관세 부과 품목은 284개(160억달러)로 후속 논의를 거친 뒤 관세를 적용한다. 지난 4월6일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 후보군으로 꼽은 1,333개에는 못 미치지만 중국이 ‘중국제조2025’ 계획을 통해 집중 육성하고 있는 첨단기술 제품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날 발표 직후 중국 상무부는 “동일한 규모의 관세를 즉각 부과하겠다”며 보복하겠다고 맞섰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한 관세 폭탄 투하를 준비하고 있다. 4월 트럼프 대통령이 USTR에 지시한 추가 관세 검토가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업계의 의견수렴을 거친 뒤 60일 이내에 1,000억달러 규모의 관세가 부과된다. 수입품 대체가 쉽도록 제재 리스트는 점유율이 33% 이하인 품목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3월 안보 침해를 이유로 모든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혀 무역전쟁을 예고한 바 있다. 이후 지난달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이 미국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대미 무역흑자를 줄여나가기로 하면서 추가 관세 부과는 중단될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도 EU나 캐나다·멕시코 등 동맹국에는 일시 유예했다.
하지만 무역협상에서 미국 측이 얻은 것은 별로 없이 양보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하순 중국과의 협상을 뒤집으며 500억달러의 수입품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겠다는 위협 카드를 다시 꺼냈다. EU와 캐나다·멕시코에 대해서도 지난달 31일 관세 부과 조치를 확정해 미중 간으로 국한되는 듯 보였던 무역전쟁을 동맹국까지 끌어들인 글로벌 전면전으로 확대시켰다.
특히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승인은 14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접견하며 “미국이 대만 문제나 무역 마찰 등 민감한 사안을 신중히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직후 이뤄진 것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강력한 맞대응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미국에 제시했던 농산물·에너지 수입 확대 계획을 백지화하고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소비재 수입 관세 인하에 미국 제품을 제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당국은 미국의 이번 관세 부과 조치 직전에 미국 반도체 업체 퀄컴과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NXP 간 440억달러(약 48조원) 규모의 인수합병(M&A) 건을 승인하는 유화 조치를 내놓았지만 미국의 번복으로 승인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산 수수 등 농산물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중국이 재개하거나 그간 보류했던 53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를 다시 시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EU 간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있다. EU는 이날 집행위원회에서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EU가 관세를 부과할 품목은 청바지·오토바이·위스키 등 28억유로 규모로 늦어도 다음달 초부터 추가 관세가 실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의 최대 암초로 부상하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 등은 관련국에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미국의 일방적 조처에 의해 시작된 무역전쟁은 승자가 없다”며 “모두가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뉴욕=손철특파원 베이징=홍병문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