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 협조 방침을 밝힘에 따라 검찰의 수사 대상과 법원의 협조 범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종심을 담당할 대법관들이 이미 “재판거래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낸 마당에 검찰이 핵심 의혹인 재판거래 문제에 칼을 제대로 겨눌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압수수색, 관련 대법관의 소환 조사 등 각 수사 과정마다 검찰과 김 대법원장, 법관들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번 주 검사장급 인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재판거래 사건을 본격 수사할 방침이다. 김 대법원장이 사건을 직접 고발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접수된 시민·법률단체 등의 고발장 20여건으로 충분히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다.
해당 사건은 올 초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에 배당됐지만 18일 특별수사부나 첨단범죄수사부 등에 재배당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후 검찰은 법원행정처에서 보관 중인 문건을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을 거쳐 사건을 재구성하고 의혹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나 업무방해 혐의를 양승태 사법부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지난 15일 대법관들이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은 검찰의 수사를 제한할 최대 걸림돌로 지목된다. 사건이 중대한 만큼 대법원 재판까지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핵심 의혹인 재판거래에 대해 최고위 판사인 대법관들 스스로 무죄를 선언한 꼴이기 때문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11명의 대법관은 물론 김 대법원장이 직접 제청해 임명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민유숙 대법관까지 한목소리를 낸 것은 사실상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는 평가다. 양승태 사법부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며 고발장에 이름을 올린 고영한 선임 대법관을 비롯해 김창석·김신 대법관이 오는 8월1일 퇴임하더라도 나머지 대법관들이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법원 안팎의 시각이다.
대법관뿐 아니라 다른 고위 법관들도 재판거래 수사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수사에 변수로 꼽힌다. 김 대법원장의 지시로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더라도 실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법리 문제는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할 경우 검찰이 기소 의견을 내는 데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지방법원장은 “지난 7일 전국법원장간담회 때 35명의 법원장이 회의 전 법리검토를 모두 하고 왔는데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판사들로 구성된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에도 유죄 논란을 언급한 것은 ‘연구회 중복 가입 해소’와 관련한 직권남용죄뿐이었다. ‘인터넷 게시글 사찰’과 관련해서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재판거래 등은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