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건강 에세이]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조기진단 인프라 구축을

이상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교육이사




올해 25세 남자 대학원생 김모씨는 보건소에서 우연히 받은 혈액검사에서 혈중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340㎖/㎗로 지나치게 높다는 통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혈중 총콜레스테롤 농도가 240㎖/㎗ 이상이면 높다고 하는데 이를 훨씬 웃돌았다. ‘몸이 뚱뚱하지도, 기름진 음식을 특별히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수치가 나왔지? 혹시 검사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40대 초반에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동맥(관상동맥)이 좁아져 스텐트(금속망)를 넣어 넓혀주는 시술을 두 번 받은 게 생각났다. 작은아버지도 50세쯤에 돌연사하셨다. 부랴부랴 확인해보니 아버지는 고콜레스테롤혈증(고지혈증) 약을 드시는 데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반적인 고지혈증 환자보다 상당히 높았다.

김씨와 아버지 형제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가족력인 셈이다. 이런 질환을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FH·familial hypercholesterolemia)’이라고 하며 총콜레스테롤 수치가 최소 290을 넘는다. 보통의 고콜레스테롤혈증과 달리 영향력이 매우 큰 유전자 1개의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며 부모에서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로 매우 높다.


FH인 경우 협심증·심근경색증 같은 혈관질환 위험이 일반인보다 5~10배가량 높다. 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기기 쉽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 병이 아주 흔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외국 자료에 따르면 인구 250~500명 중 1명이 FH다. 국내에서도 최소 10만명은 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상당수는 모르고 지낸다. 김씨의 아버지 형제처럼 심혈관질환이 생기거나 돌연사한 뒤에야 알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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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진단이 안 된 채 살아가는 FH 환자를 위해 당사자와 함께 의사와 사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정확히 진단된 FH 환자가 있으면 가족·친척 중 환자가 여럿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에 대해서도 혈액검사를 포함한 진료를 받도록 해 환자를 빨리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젊은 나이에 진단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제를 투여하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상당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FH 어린이·청소년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 예산이 들겠지만 FH 환자 상당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아 정도에 따라 약제 투여가 필요하다. 셋째, 진료 의사는 FH 진단자를 등록해 체계적으로 분석·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가 수년 전부터 FH 환자 등록·관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외국에 비해 국내 FH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환자를 효율적으로 발굴·진단할 수 있도록 일선 의사들이 이 병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FH는 보통의 고콜레스테롤혈증에 비해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상당히 높은 위험한 질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 규정은 FH를 보통의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같은 ‘경증 질환’으로 취급하고 있어 환자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이런 현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FH 환자의 조기 발굴·진단이 활성화돼야 장래에 겪게 될 심혈관질환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의 협조, 의사의 관심, 관련 부처의 배려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 돌아가야 한다.

한국인의 FH에 대한 조사·분석 사업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부모로부터 FH라는 원치 않는 유산을 물려받아 고통받는 많은 환자가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는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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